"도로써 마음과 병을 다스린다"

▲ 한의원에서 진료를 마친 박진우 원장이 둘째아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두음리에 위치한 다함 치유마을. 해발650m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10여㎞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차 한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 외줄을 타는 심경이었다. 다함 치유마을에 도착했을 때 거센 바람이 먼저 반겼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싯구가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11월말의 차가운 바람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다.

별난 한의사 부부

주차장에서 치유마을까지는 300m 정도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이것은 다함 자연치유의 1단계. 편안한 마음으로 한 호흡을 내쉬고 들이쉬기를 권한다. 이 때 시선은 주변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눈에 들어오는 주변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무언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보여지는대로 들리는대로 주변의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다함 치유마을에 도착했을때 박진우(40) 원장은 작업복 차림으로 주변정리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후 짐을 풀 수 있는 황토방으로 안내했다. 몇 군데 황토방들이 단칸방으로 지어져 다정스럽게 모여 있었다.

이곳은 한의사 부부인 박진우·김은경 교도가 자연속에서 한의원을 짓겠다는 오랜 염원이 어려있다. 해발650m 외진 산간 지역에 '다함한의원'이라고 써진 간판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날 정도다. 삶의 터전을 꾸린 이 곳은 세상의 논리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함 때문인지 2009년에는 KBS 인간극장에 5부작으로 '별난 한의사 부부'가 상영됐고, 최근에는 아침마당에도 출연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대종사 탄생가를 모티브로 황토집을 지었다.

대종사님은 정신적 지주

이 별난 한의사 부부가 원불교와 만남은 평창교당 이진여 교무와의 인연 때문이다. 이 교무로부터 대종사탄생가 엽서를 받고서 탄생가와 같은 한의원을 짓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그리고 대종사님의 일대기를 읽고서야 그들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박 원장은 "대종사님께서 초기의 어렵고 가난한 살림속에서도 제자들과 영산 방언을 하시고 숯장사와 엿장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무리 초창이 힘들어도 개척하고 창립하는 정신은 눈물겨웠다"며 "지금 우리의 모습처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 대종사님이라는 정신적인 지주가 있기에 우리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 부부는 대종사가 방언공사를 마치고 저녁에는 법석을 연 것처럼 자연속에서 몸과 마음이 치유되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이곳에 일정 기간을 머무르면서 몸과 마음의 습관은 물론 생활습관도 새롭게 바꿔보려고 구상했다.

그렇게 장소를 물색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전국을 돌아다녀도 쉽게 공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기도를 올렸다. 진리의 답변이 왔다. "너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이었다. 그때서야 박 원장은 무릎을 쳤다. 이들은 어느 정도 손님이 올 수 있는 도시의 근거리를 생각했기에 장소가 나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때서야 모든 욕심을 놓고 자연속으로 들어갈 마음을 정했다. 그러자 얼마후 이 터가 생기고 작업에 들어갔다.

박 원장은 "다함 치유마을의 공간을 꾸리는 것 자체가 혹독한 수련의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자연과 환경, 생태를 살리면서 집을 짓기에 2년이 넘게 걸렸다. 마이너스통장에 대출이자는 계속 늘어갔지만 소신을 꺽지 않았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확신으로 변했다. 처음부터 첫단추를 잘 끼우자는 심경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에 흙과 나무로 황토집을 지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박 원장은 과도한 노동으로 지쳐있었고 가족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박 원장은 무엇이 잘못되고 오류가 생겼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이들 부부에게 행운처럼 참회의 시간이 주어졌다. 올해 3월이었다. 박 원장은 참회를 통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은 마음 속에 있음을 알았다. 그동안 내가 사랑의 샘을 잃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궁극의 삶을 꿈꾸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나는 다시 껍데기를 붙잡았음을 느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아내와 가족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것이다"며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때 아내가 웃고 가족이 행복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자연이냐 도심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까운 인연이 나로 인해 웃을 수 있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야 그림자를 추구하지 않는 진정한 행복자가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 작년에 '다함한의원' 개원식을 가졌다.

이곳이 마음공부의 수행처

모든 뿌리는 마음에 있음을 깨달은 이들 부부는 아침마다 기도문 처럼 <동의보감>의 '도로써 병을 다스린다(以道療病)'를 외운다. '옛날의 신성한 의사들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병에 이르지 않게 대비했다.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반드시 마음을 바로 잡아라. 그러면 도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병든 이로 하여금 마음 속 의심과 염려스러운 생각 그리고 일체 헛된 잡념과 불평, 자기 욕심을 다 없애 버리고 지난날의 죄과를 뉘우치게 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공허한 것이고 종일 하는 일이 모두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내 몸이 있다는 것도 다 환상이며 화와 복이 다 없는 것이고, 살고 죽는 것이 다 한갓 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깨닫게 되고 모든 문제가 다 풀리게 되며 마음이 자연히 깨끗해지고 병이 자연히 낫게 된다'는 내용이다.

박 원장은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약을 먹기 전에 병은 벌써 다 낫게 된다. 병들기 전에 고치는 것을 마음을 다스린다 하고 병든 다음에 치료한다는 함은 약을 먹고 침과 뜸을 놓는 것이다. 치료의 방법은 두가지가 있으나 병의 근원은 하나이니 반드시 마음에서 말미암아 생겼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마음의 치유를 자연 이전에 자신의 마음에서 해답을 찾았다. 아내 김은경 교도도 "처음에는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되는지를 몰랐다. 너무 삶이 버겁고 힘들었다. 참회의 시간을 통해 지금 이곳이 내 마음공부하는 곳이며 수행처임을 알았다"며 "그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모든게 편안하고 행복했다. 세상이 달라보였다"고 환하게 웃었다.

다함 치유마을이 방송에 나간 후 이 깊은 산골로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좋은 환경과 약재로 옹기약탕기에 12시간 달이는 정성때문인지 한약 손님도 많아졌다.
'다함'은 '마음을 다한다'는 뜻이다. 매순간 내가 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나는 일과 인연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들은 한의사로서 자연과 사람을 매개로 온전히 깨어있기를 희망했다.

깊은 산속, 다함 치유마을의 밤은 칠흑처럼 어둡고 길었다. 깊은 어둠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때마침 봉화에 첫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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