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익산 남중리 소나무숲 도면.
경성출장소 이춘풍 교무가 건강상 더 이상 근무할 수 없자 소태산대종사가 상경하여 익산본관으로 내려가 정양하도록 했다. 경성출장소의 회관관리는 공양원 조전권과 김삼매화에게 일임하고 사무는 교도인 이공주에게 교무가 부임할 때까지 전담토록 했다.

익산본관으로 귀관한 소태산대종사는 원기14년 10월28일(음력 9.26) 추기기념제사를 마치고 이튿날, 교무가 부재중인 경성출장소에 가기 위해 총부를 나섰다. 조송광 불법연구회 회장은 기념제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함께 나섰다. 전음광이 이리역까지 배웅 차 동행했다.

이리역 가는 신작로 남바우 능선 뒤에는 용트림하며 서있는 백여년 된 소나무 몇 그루가 서있는데 보고 내왕하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소태산대종사와 조송광, 전음광이 남바우 등성이(현 남중교당 옆)를 오를 때 조송광도 그 소나무들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저 나무는 항상 보아도 아름답다. 우리 회관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
조송광의 이야기를 들은 소태산대종사가 말했다.

"송광은 어찌 그 좁은 생각과 작은 자리를 뛰어나지 못하는가. 회관이 솔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솔이 회관을 여의지 아니하여 솔과 회관이 모두 우리 집 담장 안에 갊아 있거든, 하필 솔을 그곳으로 옮겨놓고 보아야만 시원할 송광의 심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차별과 간격을 터 큰 우주의 본가를 보지 못한 연고이니라. 생각을 넓히어 작은 집과 좁은 살림을 뛰어넘어, 만고불변하는 우리 집을 보고 아쉽고 모자람이 없는 큰살림을 하여보라.

그대의 방금 생각은 이러 하리라. 회관이 그대로서는 유일한 큰집이며, 김제 원평에 벌려 있는 살림이며 현재 존재 그것이 다시없는 그대로 생각되리라. 그러나 아니다. 북일면 신룡리 몇 칸 가옥 그것이 그대의 큰집이 아니며, 김제 원평에 얼마 있는 그것이 그대의 참 살림이 아니요, 현재의 유형한 존재가 참 그대가 아니다. 회관도 변천 있는 집이요, 김제 원평의 살림도 국한 있는 살림이요, 현재의 그대도 존멸(存滅)에 윤회하는 것이니, 변천도 국한도 존멸도 없는 그대의 집, 그대의 살림, 참 나를 찾아 장존불멸(長存不滅)의 영생락을 얻어라.

사람이 다 이 우주의 큰집과 무궁의 살림과 위대한 자기를 가졌지마는, 출생 이후 자행자지에 그치고 탐진치의 욕심에 끌려 좁은 집과 작은 살림을 차지하게 되며 작은 자기를 만들어 스스로 구속하며 태우나니, 송광은 이 집을 찾고 살림을 회복하며 진정한 송광을 발견하여 구구한 인간 환멸의 생애를 놓고 큰 우주의 본가에서 초인적 생활을 하라."

소태산대종사의 말씀을 받들고 송광이 여쭈었다.

"큰 우주의 본가는 어떠한 곳이오니까?"
소태산대종사는 "그대가 지금 보아도 알지 못하므로 내 이제 그 형상을 가정하여 보이리라"하고, 땅에 '○(일원상)'을 그려 보이며 말했다.

"이것이 곧 큰 우주의 본가이니 이 가운데에는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 있나니라."

옆에 있던 음광이 여쭈었다.
"어찌하면 그 집에 찾아 들어 그 집의 주인이 되겠나이까."

"삼강령의 사리연구는 이 큰집과 큰살림을 찾고 여는 묘한 열쇠요, 작업취사는 이 살림을 다스리는 방법이며, 정신수양은 이 열쇠로 문을 열고 살림을 다스리는 힘이니 삼대력의 열쇠를 얻어야 들어갈 것이요, 그 열쇠는 신분의성으로써 조성되나니라."

송광과 음광은 소태산대종사의 법문에 감동되어 절을 올리고, 이리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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