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소태산대종사가 "참으로 기도터다"고 했던내금강 보덕암.
▲ 내금강 영원암.
원기15년 5월11일, 소태산대종사는 이리역에서 밤차를 타고 경성으로 출발하여 이튿날 아침 경성출장소에 도착했다.
경성출장소 교무 직을 수행하고 있는 재가회원 이공주와 회원 이동진화 신원요의 주선으로 금강산 여행을 준비하여, 원기15년 5월28일부터 6월5일까지 8박9일간의 여행을 맑은 날씨 속에 출발했다.

오전 8시50분 경원선 기차로 소태산대종사는 신원요, 이동진화, 이공주와 함께 경성역을 출발했다. 철원역에 하차하여 금강산 전철선에 환승하여 금강구(金剛口)에 도착했다. 자동차로 갈아타고 장안사 동리에 오후 5시반에 도착했다.

금강산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장안사로 향하여 장안사와 근처를 구경한 후 여관으로 돌아왔다.

5월29일, 명경대와 신라 고적인 '아래 대궐터'를 보고, 신라시대 영원조사가 깨달음을 얻은 영원암에 도착하여 구경하고 영원암을 떠나며 소태산대종사는 '보습영원경(步拾靈源景) 영원개골여(靈源皆骨餘)'라는 시 한 수를 읊으며 나왔다. 보문암 관음암 장경암 등을 찾아 구경하던 중 장경암을 이공주 등이 소태산대종사의 수양 터로 만들었으면 하는 욕심을 냈다.

5월30일, 소태산대종사와 일행은 나옹조사와 금동거사가 조각하였다는 삼불암을 구경하고 훈충영각(訓忠影閣)에 들어가 서산, 나옹, 지공, 무학, 사명당 외 선사와 율사들의 영정을 배견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표훈사에 도착했다.

팔담(八潭)으로 향하다 층암절벽 구리기둥에 의지한 보덕굴에 들어가 보고 소태산대종사는 "참으로 기도 터다"고 했다.

보덕굴을 나와 마하연 가까운 곳에 있는 만회암에 도착하여 선승에게 하루 숙박하기를 청하고 앞산에 있는 반야암에 올랐다. 내려오다 반야암 변소 지붕 위에 다람쥐 한 마리를 보고 소태산대종사가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다람쥐가 돌에 맞아 지붕에서 떨어져 신음했다. 소태산대종사가 말했다.

"내 귀여워 무심히 돌 하나를 던졌더니 네가 그만 죽었구나. 너도 일평생 다람쥐 노릇만 해서 쓰겠느냐. 막 떼를 썼구나."
5월31일, 만회암을 출발하여 나옹대사가 조성했다는 묘길상에 도착하여 잠시 쉬며 소태산대종사가 말했다.

"나옹은 석공 노릇도 잘 하였다. 이와 같이 산간으로 돌아다니며 소리없는 장난을 하였건마는 중생을 제도하였구나."

묘길상에서 쉬었다가 금강산 주봉인 비로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만회암을 출발한지 4시간 만에 상상봉에 당도하여 잠시 쉬었다가 하산하여 금강산여관으로 왔다.

6월1일, 비가 오는 관계로 쉬고, 6월2일, 외금강으로 출발하여 금강구에서 자동차로 신풍리까지 가서,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구만물상(舊萬物相)을 지나 온정리 금강여관에 도착했다.

6월3일, 온정탕에서 목욕하고 쉰 후, 6월4일 아침부터 비가 내려 구룡연은 못가고 신계사에 다녀왔다. 저녁공양 후, 소태산대종사는 여관주인인 예수교인과 종교적 신념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시간을 지냈다.

소태산대종사는 대화를 마친 후 이공주 등 일행에게 "내 일찍이 야소교 신자를 많이 보았으되 이 집주인의 신앙만큼 독실하기는 귀하리라. 참으로 행복자이며 앞으로도 점점 행복이 많이 오리라"고 했다

6월5일, 금강산 여행을 마무리하고 오전 8시에 온정리를 떠나 저녁 11시에 경성역에 도착하여 경성출장소로 돌아왔다.

소태산대종사는 6월8일 익산본관에 도착하여 6월11일 금강산 여행에서 산천을 보고 얻은 소감을 대중에게 말씀하는 가운데,

"보습금강경(步拾金剛景) 금강개골여(金剛皆骨餘) 이것은 금강산 구경을 기념키 위하여 읊은 바이요,

금강현세계(金剛現世界) 조선갱조선(朝鮮更朝鮮) 이것은 속인을 대할 때 금강산을 두고 읊은 바이며,

금강현세계(金剛現世界) 여래도중생(如來度衆生) 이것은 불제자인 승려를 대할 때 금강산을 두고 읊은바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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