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서대원 선진.
▲ 소태산대종사로부터 달마대사와 혜가대사의 일화를 들었던 공회당.
서대원은 어머니 박도선화가 소태산대종사의 작은 누님으로 소태산대종사와는 생질간(甥姪間)이다. 원기14년 봄에 조갑종의 인도로 소태산대종사께 귀의하고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출가 후 깨달음에 대한 강한 집념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저녁, 소태산대종사가 선방(공회당)에서 선원에게 '달마대사에게 손을 잘라 바친 혜가대사의 이야기를 법문으로 하며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자본인 몸을 상하게 하여 신(信)을 표한들 무슨 이익이 있는가. 진정한 신성은 마음에 달린 것이며 몸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대들은 몸을 상하는 일이 없게 하라'는 요지의 법문을 설했다.

그러나 서대원은 달마대사 앞에서 팔을 잘라 바친 혜가대사처럼 자기도 소태산대종사에 대한 절대의 신성만 골똘이 생각하다가 이튿날 새벽, 자기의 왼 손가락 전부를 잘랐다. 서대원은 인력거에 의지해 시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는데 용이하지 않아 손목을 자르는 치료를 한 후 총부로 돌아왔다.

소태산대종사가 서대원을 영춘원(현 종법실) 작은 방으로 불러 크게 꾸중하며 말했다.

"사람의 몸이란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 없지 못할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그 중요한 자본을 상하여 신성을 나타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진정한 신성이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몸에 달린 것이 아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지식과 문장이 뛰어나고, 한 때의 특행으로서 여러 사람의 신망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우리회상의 참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오직 이 공부 이 사업에 죽어도 변하지 않을 신성으로 혈심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우리회상의 참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대원은 손목을 자른 관계로 건강을 잃어 휴무를 하였다가 복직하여 총부 감사부장으로 근무하던 원기23년, 불경공부를 많이 해서 소태산대종사를 보필해야겠다는 뜻과 깨달음에 대한 집념을 놓을 수 없어 휴무를 하고 계룡산 갑사 선방과 덕숭산 수덕사 등을 찾아 수행에 전념했다. 서대원은 산사의 구석진 방 하나를 얻어 하루에 3시간 정도의 수면 외에 불경공부와 염불·참선에 주력했다.

서대원이 입산하려하자 소태산대종사의 큰 꾸지람이 있었고, 총부 대중들은 생활 속의 공부를 버리고 입산하였다며 규탄하고 회의를 열어 교단에서 제명 축출하기로 결의했다. 김대거가 대중의 뜻에 따라 제명결의서를 조실로 가져갔다. 결의서를 본 소태산대종사가 호통하며 결의서를 찢고 말했다.

"이 종이를 바로 재도 남기지 말고 불살라 버려라. 내가 아무리 대원이를 꾸짖는다 할지라도, 그대들은 나에게 대원이가 잠시 입산한 뜻은 결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회상을 위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해야지 내보내자는 회의를 하다니, 그렇게 내 뜻을 모르고 동지애도 없다는 말이냐?"

서대원은 총부로 돌아와 원기25년에 소태산대종사의 명으로 〈정전〉 편수에 참여하였고, 이듬해에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휴무를 하면서 산사를 다시 찾아 전무출신에서 제명됐다.

서대원은 건강악화에 결핵까지 걸려 원기28년 경성지부에서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해 6월1일, 소태산대종사가 열반하자 총부로 달려와 눈물을 흘리며 추모의 마음을 바쳤다.

'스승님을 뵈옵던 그날부터 쓸쓸한 내 가슴 한 모퉁이에 희망의 꽃망울 맺히었더니 서러운 영 이별이 웬일일까. 내 등불 밝게 켰다가 후일에 이 몸 마칠 때에 또 다시 뒤를 따르리.'

서대원은 정산종사가 종법사 취임 후 복직되어 총부교감으로 근무하다 원기30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열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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