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한 벌, 한 땀 한 땀 온갖 정성 다 담는다

▲ 70여 년 수의를 만들어온 한상길 씨.
"갓 태어나는 아기에게 준비해 뒀던 새 옷을 입히듯 수의 역시도 정갈하게 준비해 뒀다가 이 생 마치고 갈 적에 입고 갈 것이다." 인생 70여 세월을 수의만 짓고 살아온 한상길(84) 씨. 80세 고령답지 않다. 눈에도 총기가 있고, 귀에 보청기도 하지 않았다.

한 씨는 건강비결에 대해 "수의를 제작하며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다"며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올 적에는 바로 온다해서 옷 여밈을 바른쪽(오른쪽)으로 하고, 세상 하직할 때는 돌아간다 해서 왼쪽으로 수의를 여민다"고 설명했다.

평택시 현덕면 운정리 36번지에 거주하는 한 씨는 1999년 전통방식으로 수의를 만들어 온 것을 인정받아 경기으뜸이로도 선정된 바 있다. 6~7세부터 바느질을 하고 놀았다는 한 씨의 전통 수의 제작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했다.

망자에 대한 예의 최대한 갖춰야

그는 한 벌의 수의를 만들기 위해 삼베를 먼저 구입한다. "삼베는 보통 안동과 보성에서 구입한 후 화학 풀을 빼 내기위해 가마솥에 삶고 빨기를 수차례 한다. 삶으면 화학 고무가 죽처럼 나온다. 처음 산 것은 그렇게 안 좋다. 화학 고무가 빠진 후에는 풀을 해서 햇볕에 널어 손질하기 좋을 정도로 마르면 형태를 잡아 밟고 다시 널어 햇볕에 잘 말린 후 수의를 짓게 된다." 그는 수의를 만들 수 있는 삼베 손질부터 온갖 정성을 다한다. 수의를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기성복처럼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전통을 지키며 수의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기초 손질부터 가벼이 여기지 않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는 옷을 만들 때도 옷감을 함부로 넘어 다니지 않는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삼베를 펼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넘어 다니고, 밟고 지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나는 수의를 만들 때도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지킨다." 결국 산 사람 옷 짓는 정성 이상의 공력을 들인다는 것이다. 명패는 누구의 것이라 붙이지 않았지만 마지막 가는 분에 대한 예의를 다 갖춘다.

그는 수의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도 꼼꼼히 챙긴다. "옷을 만들 때 형태를 잡기위해 시침핀을 꽂고 한다. 옷이 다 된 후에는 시침핀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데 보통의 경우 대충 눈에 보이는 것만 제거하는 사례를 보곤 했다. '망자가 뭘 알겠냐'고 함부로 하면 안된다."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충고이기도 하다.
▲ 삼베로 지은 수의 두루마기. 손으로 만져보니 고슬고슬하다.
수의에도 철학이

수의를 삼베로 하는 이유는 육신과 함께 썩은 후 흙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지, 수, 화, 풍으로 흩어져 한데 어울려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그는 "후손과 함께 어우러짐을 의미한다"고 세세히 설명했다. 이러한 의미를 무시하고 요즘 수의는 화학섬유로 된 것이 많아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그는 "수의를 화려하게 만들어 파는 것이 많다. 화려함 보다는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가령 화장을 할 때도 화학섬유로 된 수의를 쓸 경우 검은 연기와 함께 훗날 유골에서 이물질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골은 눈처럼 하얀 백색이어야 하는데 누렇게 되는 경우 역시도 화학섬유와 함께 화장한 탓이다"는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기성복처럼 만드는 수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망자의 몸이 뺏뺏하게 굳기 때문에 바지저고리를 만들 때도 사폭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손쉽게 만든 수의는 여러 가지 것을 생략해서 만들고, 또 옷감을 아끼기 위해 좁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좁게 만들면 수의를 손상시키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주의를 줬다.

수의는 왼쪽 바느질을 한다. 그 이유는 돌아간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바느질을 마친 후 산 사람은 완전 매듭을 짓는다. 하지만 망자는 골매듭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그는 "이승과 저승의 끈을 완전히 풀어버린다"는 속설을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자손들의 마지막 효는

한상길 씨의 뒤를 이어 며느리인 임미숙(59) 씨가 수의를 짓는 법을 전수 받고 있다. 임 씨는 수의를 펼치며 "겉옷부터 속옷까지 17가지나 된다"며 수의를 일일이 설명했다. 수발랑(손톱주머니), 두발랑(머리카락 주머니), 조발랑(발톱주머니), 이불, 요, 베게, 면막(얼굴 가리개), 손장갑, 버선 등 어느 것 하나 빈틈없이 바느질을 마친다.

큰 욕심없이 바느질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탓일까. 한 씨는 "아쉬운 것도 하나도 없다"며 "저녁 잘 먹고 잠잘 때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다만 가는 길에 염불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는 최후의 모습도 밝혔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당부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수의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 허둥지둥 세상 살기에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부모님 수의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사람은 효자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데 제대로 된 수의 한 벌 입혀 드리는 것이 마지막 효가 되는 것이여. 무조건 고가의 수의를 선택하는 것은 정성이 없어." 정갈함을 최고로 중시하는 한 씨의 정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만든 수의를 만져보는 순간 한 땀 한 땀 온갖 정성이 깃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오늘 다 못 만들면 내일 또 만든다.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망자를 위로하는 뜻이 수의에 담긴 것이다.

"아침이면 '천수경'으로 주변 정화를 한 후 바느질에 임한다"는 한 씨의 말에서 망자들의 안락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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