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기도 할수 있어 행복합니다"
봉공활동을 감사의 기회로 알아
자녀들에게 전무출신 염원

▲ 넷째딸 정아와 함께 한 이정신(왼쪽)교도.
광주 용봉동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 비아교당 이정신(53)교도가 생활하는 곳이다. 현관에 들어서자 바로 눈 앞에 금색 일원상이 걸려있다. 갑자기 숙연해 진다. 절로 합장이 되어진다. 한켠에는 목탁과 향로가 진설되어 있어 신앙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생활 단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신앙심은 남편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제가 아침 기도하고 있으면 참석이 가능한 가족들이 함께 합니다. 각자의 생활로 인해 시간을 맞출 수는 없어도 기도를 함께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행복입니다."

마침 밖에 나갔다 들어온 넷째딸 정아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의 곁에 다정하게 앉았다. 평소 가족간의 우애를 보는 듯 했다. 엄마의 평소생활에 대해 묻자 정아는 조분 조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초등학교 5학년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럽다.

"엄마는 아침마다 기도를 하셔요. 아침 심고와 저녁심고를 빼 놓지 않아요. 가족 생일날이 되면 기도를 해 주십니다. 그리고 항상 가족들의 건강을 챙겨주셔요."

정아의 목소리는 또렷또렷했다. 대답을 곧잘 했다. 아마도 자연스럽게 배어든 신앙심의 결과라 보여진다.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초등학교 4학년인 장남 도운이는 그의 기도생활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뒤에서 가만히 앉아 함께 염송을 하기도 한다. 그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 뿌듯한 속내를 드러냈다.

"도운이는 제가 기도를 하고 있으면 성가와 염송들을 곧잘 따라서 해요. 저녁심고 때는 목탁을 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대신 목탁을 가지고 놀곤 했죠. 목탁을 친구처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만큼 아들이 울리는 목탁소리는 경쾌합니다."

그의 말에 도운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가 이처럼 자녀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것은 지속적인 기도생활이라 볼 수 있다. 첫째 딸 일중이와 둘째 딸 일선이에 이어 셋째딸 경아가 태어난 이후 그의 기도는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

"기도의 소중함을 알게 되기까지 언니(이양신·이명신 교무)들의 간곡한 부탁이 한 몫 했습니다. 언니들이 언제나 기도생활하기를 권했지요. 29세에 결혼 후 신림교당에서 교도생활을 했을 때만 해도 기도가 그렇게 필요한 것 인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드문 드문 법회 나가기를 반복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 교당을 다녀오면 편안하다는 것을 체득하면서부터 기도에 맛을 들이게 됐어요."

그는 언니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권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됐다. 전무출신을 하지 못한 그에 대한 배려였다. 백일기도와 개인기도 등을 하면서 기도의 중요성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는 7년 전 서울에서 광주로 이사 오면서 봉공(奉公)활동을 기도와 접목시켰다.

"광주첨단산업단지에서 수술 의료기구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과 약속한 것이 있었어요. 광주로 이사 오는 조건으로 집이 교당과 가까이 있을 것과 어린이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렇게 해야 기도는 물론 봉공활동을 힘 닿는 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남편 이진선 교도는 그의 뜻에 순순히 따랐다. 고등학교때 연합회장을 하기도 한 그는 아내의 부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가정과 교당은 물론 회사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는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점심 시간에 맞춰 집에 들른 그는 아내의 봉공활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교당 봉공회겸 총무 역할을 하다 지난해부터 봉공회장을 했죠. 교구에서 실시한 바자에 김장아찌, 오이지, 간장게장 등을 선보였죠. 교도님들과 자모들이 함께 정성스럽게 만든것이라 인기가 있었어요. 아내가 틈틈이 봉공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 줍니다."

그는 남편의 말이 끝나자 '이렇게라도 봉공활동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교구 바자를 끝낸 후 언니들에게 전화를 했다. '기쁘고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언니들은 한결같이 '그 마음 변하지 말고 잘해 나가라'고 당부했습니다. 언니들의 말속에는 전무출신을 함께 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이 어려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원평에 계셨던 대산종법사님의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네가 들어와야 삼학(양신·명신·정신)이 이뤄진다'고 하셨어요. 내가 비록 가지 못한 길이지만 자녀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내생에는 전무출신 하기를 서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벽면을 쳐다 보았다. 밝게 웃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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