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이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몸이 왕궁가에 내렸다(世尊未離兜率 已降王宮)는 것은 부처님 팔상(八相)의 첫 번째에 해당한다. 석가모니가 도솔천에 내렸다는 뜻에서 '도솔내의상'이라고 한다. 본 화두는 원래 〈화엄경〉 이세간품의 '십종미세취산문'의 뜻을 요약하여 전해진 것으로 후세에 만들어진 불교의 대표적 화두이다.

본 문목의 용이한 이해를 위해서 용어 파악이 필요하다. '도솔천'이란 불교 욕계의 육천(六天) 중 사천(四天)이며, 여기에는 칠보로 만든 궁전이 있고 하늘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미륵보살이 정토로 여기는 곳이다. 인도 탄생 이전에 석가가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왕궁가'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나라로서 카빌라국을 말하며, 그곳의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의 왕자로 태어났다.

본 화두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불교 삼세의 공간관이 드러나 있는데, 석가모니가 영원한 세월 속에서 도솔천과 왕궁가라는 공간계에서 자유자재하고 있다. 불타는 천상의 도솔천과 인간의 왕궁가라는 두 공간 사이에서 한 공간 개념의 집착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본 문목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수양연구요론〉 문목의 97번째, 〈불교정전〉과 현행본 〈정전〉 의두요목의 첫 번째, 대산종사의 대적공실 법문의 첫 번째에 나오는 항목이다. 소태산은 대각 직후 석가모니에 연원을 대고 불교를 연원종교로 삼았다는 점에서 불교의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원불교에서 이를 연마토록 하고 있다.

불교의 화두를 인용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소태산은 이를 직접 자신의 법어와 관련짓고 있다. 선승이 봉래정사에 와서 묻기를, 여래는 도솔천을 여의지 아니하시고 몸이 이미 왕궁가에 내렸다고 하니 무슨 뜻이냐고 하였다. 소태산은 이에 자신을 비유하여 말하기를, 실상사를 여의지 않고 몸이 석두암에 있다(〈대종경〉 성리품 16장)고 하여 이 역시 공간 자재의 여래 실상을 보이고 있다.

비컨대 석가모니에 있어서 도솔천과 왕궁가는 소태산에 있어서 실상사와 석두암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도솔천과 석두암은 정토극락이라면 왕궁가와 석두암은 현상의 인간세상이라는 두 세계가 펼쳐진다. 두 가지를 극명하게 대조하면서 소태산은 정토극락과 현상세계, 곧 탈세속과 세속의 미분(未分)이라는 해탈 자재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대산종사도 〈정전대의〉 '수신강요'에서 말하길, 불타는 도솔천 내원궁의 일위 호명보살로 있다가 마음대로 내거(來去)하였으니 우리도 마음대로 육도세계를 내거하도록 마음의 자유를 얻자고 하였다. 삼계 육도를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해탈자재의 대적공이 필요한 이유이다. 중생은 시간과 공간에 갇혀 살아가므로 육도 윤회의 고통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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