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인의 맥! 출가위 심법

▲ 방길튼 교무 / 전북교구 순창교당

출가와 출가위

출가(出家)란 무엇일까? 집(家)을 벗어나 떠난다는 것입니다. 집을 벗어나 떠난다는 상징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어리석습니다. 출가와 가출은 집을 나오는 것은 같으나 의미가 다릅니다. 가출은 철부지 아이나 가정불화를 일으킨 성인이 무작정 집을 나오는 것인데 비해, 출가는 국한을 벗어나는 과정입니다. 인연과 소유의 국집(局執)을 벗어나 해탈의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가(家)는 '집 가'로 이 집은 집착의 집입니다.(대산종사) 육신을 내 것이라 집착하고 가족과 권속만을 나의 것이라 집착하여 한정하는 것입니다. 집은 이처럼 인연관계의 애착과 소유의 탐욕을 상징합니다. 또한 출가는 의존과 안주의 타성에서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하는 도전으로 잘못된 업을 청산하고 새로운 업을 짓는 진급의 과정입니다.

이처럼 출가는 국한을 벗어나는 여행이라면 출가위는 이 여행자의 어떤 심력의 경지입니다. 여행은 다 떠날 수 있어도 여행의 맛을 다 느끼는 것은 아니듯, 출가는 다 할 수 있어도 출가위의 경지를 감득하기는 어렵습니다.

출가위는 항마위의 국한을 벗어나는 것이다

진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무상(無常)의 강물이며, 인연으로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무아(無我)의 마당입니다. 그러니 진리의 산천에는 집을 지을 수 없고 다만 천막을 치고 그 때 그 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니 자신도 가족도 재물도 잠시 맡겨진 것으로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바깥에도 내면세계에서도 집이 없어야 합니다. 무주택자여야 합니다. 집을 지어 국집하면 불행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언가에 걸려 국한되고 집착되면 안 됩니다. 국집을 벗어나는 출가정신으로 출가위의 경지에 올라야 합니다. 보통급에서 특신급으로 상전급으로 항마위로 출가여행을 떠나 출가위의 경지를 체험합시다. 출가위는 항마한 그 법력에 큰 덕을 갖추어 항마위의 국한을 벗어나는 경지입니다.(성가90장) 항마위의 소국집에 묶이면 출가위는 못됩니다. 항마위의 능한 점에 고정되면 성장이 멈추고, 항마위의 아집에 묶이면 독단이 생겨 의견교환과 소통이 안 됩니다. 그리고 출가위가 되려면 반드시 여래위를 표준삼아야 합니다.(대산종사)

법인성사는 출가위 심법의 시범이셨다

대종사님은 새 회상(교단)을 세우실 때 처음부터 출가위 심법으로 기초를 다지셨습니다. 표준제자인 구인선진을 통해 출가위 심법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4월28일은 내용적으로 대종사님의 대각절(大覺節)이라면 법인절은 개교절(開敎節)입니다. 왜냐하면 대종사님께서 표준제자인 구인선진과 함께 새 시대의 도덕사업을 열기 위해 법계의 관청에 정신개벽의 사업신청서(법인기도)를 제출하시고, 추가로 이 일을 위해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무여한의 생명'을 담보로 올렸던 것입니다. 이 사무여한의 정신이 바로 출가위 정신입이다. 그래서 이 정신으로 인해 진리의 관청으로부터 새 시대를 책임지고 인도할 '백지혈인의 허가증'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음부공사의 음부(陰府)는 바로 마음이요 모든 존재의 저변입니다. 법계의 모든 일이 마음으로 되는 것입니다.(무본편 2장) 밖으로 드러난 외부의 인정 즉 양계인증이 되어도 마음과 마음으로 인정이 안 되면 실질적인 인증은 아닙니다. 음계인증의 음부공사가 되어야 합니다. 구인선진께서 마음으로 자신이 인정되고 서로 서로 인증되셨던 것입니다. 법계의 인증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대종사님은 우리 교단의 기초를 출가위 심법으로 터닦기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정신개벽의 교화사업을 하려면 출가위 심법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출가는 국한을 벗어나는 여행이라면

출가위는 여행자의 심력의 경지

출가위도 삼학수행자이다

그렇다면 출가위 심법은 어떻게 조성되어 있을까? 출가위도 삼학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출가위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당과 사회국가에서도 공도를 위하는 삶입니다. 삼학수행으로 법을 위해서 몸을 잊으며(爲法忘軀) 공을 위해서 사를 버립니다.(爲公忘私)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수행을 통해서 출가위 심법의 용심(用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출가위의 삼학수행을 살펴봅시다. 출가위는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이해를 건설합니다. 즉 모든 것을 성리대전(性理大全)합니다. 성리는 천조(天造)의 대소유무로, 상호의존하여 서로 존재의 '근원'이 되는 대(大)자리와 '특성'과 '차이'의 소(小)자리 그리고 '변화'와 '인과'의 유무(有無)자리입니다. 이처럼 모든 처사를 대소유무의 성리를 따라 시비이해를 판단하여 처리하는 것이 출가위의 취사력입니다.

그리고 출가위는 모든 종교의 교리에 정통하여 이 교지를 통합활용하는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입니다.(〈정전〉 '교법의 총설') 교리(문자경전)는 마음경전으로 현실경전을 본받아 일과 이치를 밝힌 것이니(수행품23장), 모든 교리를 통해 한 마음 밝히고(通萬法明一心) 한 마음 밝혀 모든 교리에 정통하는 것입니다.(明一心通萬法) 이것이 출가위의 연구력입니다.

또한 죽을 만큼 힘든 경계속에서 죽지 않고 죽기로써 하는 것,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해도 죽을 힘을 다해 하는 것, 일체생령의 행복을 인도하는 대종사님의 교법과 교단을 위해 함정에 빠져도 사지(死地)에 빠져도 여한이 없는 것, 이것이 출가위의 수양력이요 순교정신입니다. 표준제자인 구인선진들의 법인기도 등의 창립정신 속에서 이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삼학수행 아니면 출가위의 대자비와 대보살심도 나툴 수 없습니다. 삼학 용심이 출가위의 여의보주(如意寶珠)입니다.

만사여의 출가위 심법

출가위는 탈코드화-재코드화, 탈영토화-재영토화로 배치-재배치하는 유목주의(Nomadism)을 횡단합니다. 이처럼 출가위는 어떤 경계에서도 해탈자유하는 유목(遊牧)의 달인이며, 중생들의 천만가지 원(願)과 근기에 따라 백억 변신하여 자비를 생산공급하는 대보살입니다.

자! 출가위 심법을 생산합시다. 특히 사회의 축이요 교당의 축인 지도인에게 이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축이 중심을 잡을 때 바퀴가 돌아가듯 지도인이 중심을 잡을 때 그 집단은 원활합니다. 공부인이여! 지도인이여! 지금 출가위 심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대조해 봅시다. 구성원 간에 갈등이 고조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이때 출가위 심법이 안 되면 어떤 처방을 내놓아도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이 출가위 심법의 유무에 따라 가정과 교당과 사회 국가가 편불편, 행 불행이 좌우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