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 젊어졌지" 어르신들 이구동성

▲ 키보드 및 기타 연주자 어르신들 평균나이는 70대 후반이다.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한다.
'고향무정','빈대떡신사' 등…. 노래방에서만 부르던 옛 노래를 직접 연주하는 어르신들. 주름진 왼손으로는 음계를 힘껏 누르고, 오른손은 기타 줄을 튕긴다. 이때 나는 소리는 7~80평생 귀로만 듣던 구수한 노래 가락이다.

매주 화·목요일 오전 10~12시에 진행되는 무주노인종합복지관의 락락밴드. 밴드 구성원의 평균나이는 70대 후반이다. 83세 최고령 김태선 어르신은 "태어나 처음으로 기타 연습을 하다가 갈비뼈 나간 줄 알았다. 오른쪽 옆구리에 기타를 안고 연습하다보니 어느 날부터 쑤시기 시작해. 그래서 서울 큰 병원 가서 X-Ray 까지 찍었어. 갈비뼈 나간 줄 알고 말이여"하고 큰 웃음을 지었다.

악기연주를 하며 노후 인생이 달라진 락락밴드 단원들을 만났다.

내 생에 처음 악기 연주

봄비가 내리던 22일 오전. 락락밴드 단원들의 연습일이다. 시간을 맞춰 빗속을 뚫고 무주노인종합복지관에 도착했을 때 지하 연습실에 간간이 베어 나오는 드럼과 키보드 연주하는 소리가 제법 잘 맞는다.

락락밴드 김진원(68) 지도교사는 '어린아이들 말 가르치듯 이해하기 쉽게 눈높이'에 맞춰 지도 중이었다.

김 교사는 "기타를 치는 손이 다들 농사하던 손이라 굳었어. 피크도 잘 못 잡고, 2~3개 씩 코드를 잡아야 하는데 안 잡혀. 그래서 악보에다 계명을 일일이 다 써서 멜로디를 익혀 기타를 치게 했다"고 처음 가르칠 때의 상황을 말했다. 악보 보는 것이 익숙치 않아 계명으로 멜로디를 하나하나 익혔다. 그렇게 이해하다 보니 취미가 붙기 시작한 것이고 '한 번 해 보자'고 의기투합을 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김 지도교사는 "아직도 악보 보는 것은 여전히 어려워 계명을 써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노력했다는 것이다"고 칭찬했다.

기타줄로 인해 상처를 입어 왼손 엄지손가락에 반창고를 감은 김태선 어르신은 "가르쳐 주는 선생님의 열성이 대단하다. 악보도 못 보는 사람 끌고 갈 때 그 답답함이 얼마나 크겠느냐"며 "무지(無知)를 깨우쳐서 지금 연주할 수 있는 상황까지 끌어 올렸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윤부자(69) 어르신은 "드럼을 이곳에 와서 처음 배웠다"며 "곡의 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워서 연주를 한다"고 말했다. 음악적 감각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이다. 김 지도교사는 "원래 음악은 다 외워야한다. 연주하며 일일이 악보를 다 보는 것도 보기 안 좋고 노래도 할 수 있으면 해야 하는데 악보만 볼 수 없다"며 외워야 함을 강조했다.
▲ 김진원 지도교사의 지도에 열심히 연습 중인 아코디언부.
평균나이 70대 고령, 열정은 20대

락락밴드의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균나이 70대 고령이다 보니 평소 글씨를 보려면 돋보기는 필수이다. 연주 때 돋보기를 쓰고 공연하는 것은 보기에 좀 안 좋아 악보를 최대한 크게 복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연주를 할 때 연주자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악보만 보이는 에피소드도 벌어지곤 한다.

또 축제 무대에 초청되어 가서보면 생각보다 무대가 좁아 약간 실망할 때도 간혹 발생한다. 무대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 뿐 아니다. 연주를 위해 리허설을 할 때면 무대 중앙에 드럼이 자리하고 오른쪽에 키보드, 기타, 왼쪽에는 색소폰, 아코디온 등 여타의 악기가 배치된다. 이때 어르신들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벌어진다. 그 이유는 '관객에게 내 얼굴이 안 보이니 살짝 비켜 앉으라'는 주문이다. 이렇다 보니 기타끼리 충분한 공간을 배치하기가 어려운 상황도 벌어진다.

지역행사 초청 1순위

락락밴드가 어느 정도의 연주 실력을 갖추자 각종 지역행사에서 초청 1순위이다.
초등학교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이웃 지역 복지관 행사에서 초청되기도 한다.

특히 무주 반딧불이축제에서는 이제 단골 출연자가 됐다. 각종 행사에 단골 출연자가 된 데에는 단원들 모두 '무대공포증'이나 '긴장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설사 음 한 두 개 실수했다 치더라도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갈 정도로 '강심장'을 지녔다.

윤부자 어르신은 "단원들이 평소에 한두 번 연습을 빠지다가도 공연 출연날이 잡히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며 "책임감이 강한 것도 있지만 우리 나이가 되면 지지 않으려는 강한 질투심도 생기게 된다"고 시인했다.

윤 어르신은 "한 번 밴드 단원이 되면 어느 누구도 중도에 탈락하는 사람이 없다"며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신입단원으로 들어오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못 들어오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소개했다. 단원 결원이 발생하지 않으니 신입단원들은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 락락밴드의 드럼연주자 윤부자 어르신(뒤쪽).
정신건강 양호, 우울증 제로

어르신들의 밴드 활동하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인생관을 살펴봤다. 연습하던 어르신들은 이구동성 '한마디로 젊어졌다'고 외쳤다.

김순기 어르신은 "친구들과의 노후 삶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김 어르신은 "나는 뿌듯하다. 힘없어서 연주 못할 때까지 해보고 싶다. 건강에도 좋고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악기 하나로 어르신들 스스로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지도교사는 "평생 음악을 듣기만 하던 것을 직접 연주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정신건강에도 크게 작용한다"며 "손자녀나 자식들 앞에서 농사일만 하던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타를 치거나 아코디언 연주를 하면 세련된 사람,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즉 '괄목상대한다'는 것이다. 연주하며 가족 간 화목해 지고 친근해진 사례가 많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춘근 어르신은 "젊은 시절 노래하며 기타치고 싶은 꿈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인생 마지막을 살아가면서 남다른 추억이 되고 행복하다. 후손들도 나를 그렇게 기억해 줄 것 같아 기쁘다. 아름다운 추억을 주위 인연들에게 남겨 주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렇듯 건전한 노후 생활을 하다 보니 자식들도 외면하지 않는다. 기타와 아코디언을 사주는 자녀, 엠프까지 사주는 자녀 등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홍원귀 노인사업 담당 직원은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며 "아팠던 어르신도 이 시간을 위해 미리 병원을 다녀온다거나,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시간만큼은 꼭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소개했다. 취미생활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성구 복지관장은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고,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다보니 우울증도 없다"며 "건전한 노후를 보내니 죽음의 준비도 건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고 어르신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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