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금강원에서 예회와 선, 각종 행사를 하며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법흥을 즐겼다.
깔깔대소회(呵呵大笑會) 때에는 소태산대종사도 경축가를 부르고 대중의 기운을 돋우며 "나와서 다 놀아라. 무엇이라도 해라. 닭소리라도 해라. 돼지소리라도 해라"고 했다.

기관지 기록에 의하면 원기13년 6월 하계기념일 오전에는 기념식을 하고, 오후 8시부터 전음광의 사회로 깔깔대소회가 열렸다. 각 재능대로 일장의 희활극(喜活劇)을 연출했다. 귀청이 요동칠 만큼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고 웃음소리에 금강원이 흔들흔들했다.

원기13년 12월 동계기념일 오전에는 기념식을 하고, 저녁 8시부터 깔깔대소회가 열렸다. 박대완의 사회로 처음 시작할 때에 전음광이 나와 재미있는 춤으로 침묵하던 공기를 깨뜨려 금강원이 흔들릴 듯한 웃음소리는 이때부터 폭발되었다. 2시간이 되도록 청아한 가곡, 활발한 무도(舞蹈), 그 외 각자가 자발적으로 나와 기능대로 선보이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용하고 순박하던 저들의 마음속에 그러한 흥취가 들어 있었던가?'하는 느낌을 가졌다.

원기17년도 명절기념일은 오후 4시까지 기념식을 마치고, 장내에 14개의 촛불을 밝히고 경축의 노래를 부르며 6시경까지 흥겹게 경축했다. 저녁공양은 국수로 먹고 밤에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소인극 '악한의 회과(悔過)'를 공연했다. 그 기묘한 연출은 전문 배우를 뺨칠 지경이어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의는 결국 패배하고 만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끝으로 대중들이 포복 졸도한 것은 김정종·김대거 두 소년의 코미디 1막이었다.

다음 날(음력 6.26)은 예회일로 오전 예회를 보고 오후 2시반에 법회가 연장되었다. 이만선화·이완철·조갑종의 감상담에 문정규가 일어나 도가(道歌)를 부르고 김남천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칠순 노옹의 흩날리는 백수 풍채와 충정에서 나오는 그 낙도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감탄했다. 방안 가득히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는 산이 무너지는 듯했다.

원기22년 11월6일에 시작하는 동선에는 100여명이 입선하여 결제식을 시작으로 남녀 선객들은 매일 열심히 공부했다. 특별히 노인들의 낙도하는 모습이 두드려졌다. 소태산대종사가 설법할 때에는 전삼삼 등이 무수히 절을 하고, 강연할 때에는 박사시화의 낙도의 춤이 간혹 나와서 일반 동지들의 법흥(法興)을 더욱 북돋았다.

선방으로 설법을 하기 위해 소태산대종사가 나오자 앞줄에 앉은 할머니들이 무수히 절을 했다. 이에 소태산대종사는 "저 보살들이 저렇게 절을 하니 내생에는 간지대 같이 크면 어쩔까?"했다.

평소에 소태산대종사가 설법할 때는 삼천대천세계를 진압하고 일체 육도사생이 한자리에 즐기는 감명을 주었다. 이럴 때에는 박사시화·문정규·김남천 등이 백발을 휘날리며 춤을 추고, 전삼삼·최도화·노덕송옥 등은 일어나 무수히 절을 올려 장내의 공기를 진작하며, 무상의 법흥을 돋았다. 마치 시방세계가 다 우쭐거리는 것 같았다. 소태산대종사가 성안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큰 회상이 열리려 하면 음부에서 불보살들이 미리 회의를 열고 각각 책임을 가지고 나오는 법이다. 저 사람들은 춤추고 절하는 책임을 가지고 나온 보살들이 아닌가. 지금은 우리 몇 사람만이 이렇게 즐기나 장차에는 시방삼계 육도사생이 고루 함께 즐기게 되리라."

원기23년도 총대회에는 500여 동지가 총부 대각전에 운집하여 오전 10시부터 총대회를 하고, 오후 8시경부터 총부 청년들의 발기로 지방경연 여흥회가 열렸다. 일류 성악가들의 노래도 좋았거니와 60~70세가 넘는 노인들의 낙도의 가무는 보는 자 듣는 자로 하여금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했다.

원기24년 총대회 겸 공동생일기념일을 맞이하여 이날 밤 대각전 가설무대에서 열린 수백 동지들 사이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여흥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경성의 황정신행은 승무를 추고, 부산의 임칠보화는 고전 춤, 총부의 류허일은 시조, 북일주재소 순사 황가봉은 춘향가, 정산 송규의 체조에 가까운 주먹 춤, 오창건의 그 비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어깨춤은 보는 자로 하여금 포복 졸도케 하더니, 김형오의 특기인 장타령과 독경에 이르러서는 아픈 뱃살을 겨우 움켜쥘 지경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묘기가 백출했다. 부끄러움과 꾸밈을 벗어나서 모든 회원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려는 순진한 마음뿐이었다.

총회나 특별행사가 끝난 후에는 각지에서 모인 재가출가와 교단을 사찰하는 순사까지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낙원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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