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아이'에 대한 열망은 이곳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교육의 천국이라는 한국을 무색케 할 만큼 도처에 널린 사설 학원들과 다양한 두뇌개발 프로그램들에, 최근에는 '머리가 좋아지는 보약'까지….

도가 사상서인 장주(莊周)의 〈남화경(南華經)〉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지구에 내려와 인간을 도울 일을 찾던 신은 한 나라의 왕을 만나게 된다. 자비롭고 친절했던 왕은 신의 얼굴에 눈·귀·코·입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신에게 눈과 귀, 코와 입을 차례로 만들어 주었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던 신은 입까지 완성되자 마침내 죽고 말았다.

우리는 화려한 모습(눈), 아름다운 소리(귀), 달콤한 냄새(코), 남에 대한 험담(입) 등에 우리의 본성을 빼앗기며 산다. 동양사상에서는 눈·귀·코·입을 에너지가 빠져 나가는 구멍, 즉 '4도둑'이라 하여 경계한다. 에너지를 잘 보존하고 있던 신은 왕이 만들어 준 눈·귀·코·입을 통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결국 죽고 만 것이다.

몇 년 전 퇴임하신 원로교무들을 모시고 산행을 한 적이 있다. 퇴임 직후부터 청력이 안 좋아지신 한 선진이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눈치다. 그 분께 대화 내용을 말씀드리려 하자, "내가 꼭 듣지 않아도 될 내용이라서 진리께서 못 듣게 하시는 게 아닐까? 괜찮아" 하신다. 동양에서는 노화에 따른 이러한 감각의 둔화를, '내생을 위해 에너지를 저장해 두려는 진리의 작용'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종사님께서는 좌선법에서 "노심초사를 하여 무엇을 오래 생각한다든지, 또는 무엇을 세밀히 본다든지, 또는 무슨 말을 힘써 한다든지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침이 마르나니, 당연한 일에 육근의 기관을 운용하는 것도 오히려 존절히 하려든, 하물며 쓸데없는 망념을 끄리어 두뇌의 등불을 주야로 계속하리요" 하셨다.

나의 경우 머리 쓰는 일은 생각들이 쉬어진 아침 시간에 주로 한다. 낮 시간과 비교해 보면 5~10배는 머리가 맑다. 흙탕물에 가려 뿌옇게 보이던 컵 속의 동전이 불순물이 가라앉으면서 선명히 드러나는 이치와 같다 하겠다.

불가에는 '연쇄살인범도 반성을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철학자들은 절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끊임없는 생각'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말이다. 분명히 '생각'은 인류문명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차는 결국 사고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현대인들의 '끊임없이 생각하는 습관'은 우리를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파멸'에까지 이끌 수도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영재 프로그램에 보내는 것도, 머리가 좋아지는 보약을 지어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하나 더, '생각을 쉬는' 습관이나 방법도 익히게 하여주는 것은 어떨까?

<미주서부훈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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