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긴한 길'이라는 뜻의 '요도(要道)'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걸어가야 하는 길을 뜻한다. 인생의 요도란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행해야 할 도를 말하며, 공부의 요도란 공부(수양)를 함에 있어 반드시 닦아야 할 도를 의미한다.

대종사께서는 우주와 인간의 모든 윤리가 두루 통하게 된 사은사요의 윤리를 인생의 요도로 제시해 주셨고, 유, 불, 선과 각 종교의 정수가 통합된 삼학팔조의 원만한 수행 길을 공부의 요도로 제시해 주셨다. 정산종사께서도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는 전만고 후만고에 찾아볼 수 없는 대도라고 하셨다.(〈한울안 한이치에〉 자비행 41절)

대종사께서는 불법과 생활이 둘이 아닌 불법의 생활화를 강조하셨고, 신통과 이적을 엄금하시고 오직 인도상 요법을 주체 삼아 일용 범절과 평범한 도로써 중생을 제도하셨다.(무본편 58장)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는 생활과 유리되어 있던 불법(진리와 수행)을 우리의 생활로 좀 더 가까이 끌어내린, 원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의 관계를 살펴보자. 대종사께서는 약재(인생의 요도)와 의술(공부의 요도)에 비유해 주셨다. "비록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진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를 발견하여 가르쳐 주시는 분이 없다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활용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서가모니 불이 이 세상에 나오셨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 일원상의 진리가 없었다면 서가모니 불이 되실 수도 없고, 또는 사십구년 동안 설법하실 자료도 없었을지라."(교의품 11장) '원래 존재해 왔던 것'과 '활용'면에서는 '진리'와 '부처님'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

법력(공부의 요도)이 있어야 사은사요(인생의 요도)를 실천할 수 있다. 반대로 일원상을 신앙하는 것(인생의 요도)이 정법수행의 원동력(공부의 요도)이 되기도 한다.(원리편 3장) 서로 도움이 되고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의 관계에도 비유할 수 있다. 서로에게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 된다.

천지보은의 조목은 삼학의 내용이 주가 되고, 과보 받는 내역(인과)과 사은의 도를 단련하여 작업취사의 과목을 정하였다.(서품 19장)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는 둘이 아니다. 서로 도움이 되고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삼학의 경우처럼 실제에 있어서는 함께 '밟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신앙문과 수행문이 나뉘어 있는 교리도를 처음 보았을 때, '인연이 닿는 한 쪽의 문을 통해서도 진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했던 적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인생의 요도나 공부의 요도 하나만으로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삼학이 병진되어야 하듯, 인생의 요도(신앙)와 공부의 요도(수행)도 반드시 병진되어야 한다. 

<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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