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불교정전〉에 소개된 교리도.
▲ 교리도를 발표할 당시 제35회 동선에 입선한 회원들의 기념 사진(원기28년).
소태산대종사는 기본교리를 배우기 쉽고 실천하기 쉽게 간단한 도식(圖式)으로 그려 원기17년에 발간한 〈육대요령〉에 교리도(敎理圖)로 표현했다. 그 후 〈정전(불교정전)〉을 편찬하며 새 교리도를 발표했다.

원기26년 1월, 경진동선 중 소태산대종사는 〈정전〉을 초안하고 있었다. 이때 초안한 교리도를 박장식이 보고 여쭸다.

"〈육대요령〉의 교리도에는 사요(四要)가 들어 있는데 이 교리도에는 어찌 빼셨습니까?"

"신앙문과 수행문 속에 사요의 정신이 다 들어 있으므로 빼고 보은의 대요로 천지은에 응용무념의 도, 부모은에 무자력자 보호의 도, 동포은에 자리이타의 도, 법률은에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는 세우는 도를 넣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있으니까 위에다 따로 '보은 즉 불공'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 위에 사은이 있고 하니, 보은 즉 불공이란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냐?"

원기27년 임오동선은 12월26일부터 1개월 여간 1백여 명에 가까운 선원들이 입선 공부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선원 대중들에게 '교리도를 모두 다 하나씩 써내라'고 했다. 모두 다 같이 자기 소견대로 써냈다. 대중이 써낸 것을 일일이 본 소태산대종사는 교리도를 연필로 새로 그리고 초안해서 박장식에게 '정서(淨書)해 오라'고 해서 박장식이 사무실에 가서 정리하여 올렸다.

원기28년 1월, 소태산대종사는 새로 정한 교리도를 가지고 야회시간에 공회당 선방에 나와 칠판에 '○'을, 사대강령을 쓸 자리에 '□'를 그리고, 교리도 형태를 그려 놓고 "거북이 같다. 사람도 같다"고 했다. 교리도를 발표한 후, "하도낙서(河圖洛書)에 거북이가 팔괘(八卦)를 지고 나왔다고 하는데, 마치 교리도가 비슷하다"며 기뻐했다.

소태산대종사가 이어 말했다.

"참 보기가 좋다. 꼭 거북이 같이 생겼구나. 거북이는 오래 사는 영물이다. 나의 법도 수만 년 갈 것이다. 내 교법의 진수가 모두 여기에 들어 있건마는 나의 참 뜻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꼬. 지금 대중 가운데 이 뜻을 온전히 받아갈 사람이 그리 많지 못한 듯하다. 그 원인은, 첫째로 정신이 재와 색으로 흐르고, 둘째는 명예와 허식으로 흘러서 일심 집중이 못되는 연고이다. 그대들이 그럴진대 차라리 이것을 놓고 저것을 구하든지, 저것을 놓고 이것을 구하든지 하여, 좌우간 큰 결정을 세워서 외길로 나아가야 성공이 있으리라.

사은과 삼학 팔조의 법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미물곤충이나 도둑들까지도 삼학을 놓고서는 살 수 없는 법이다. 내 교법의 진수가 모두 여기에 들어있다. 이대로만 수행해가면 부처 못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대들이 나를 따라 처음 발심한 그대로 꾸준히 수행해 가면 누구나 성불제중의 큰 공을 쌓을 것이다."

소태산대종사가 이어서 말했다.

"수도하는 사람의 근기에는 하근기, 중근기, 상근기의 세 가지가 있다. 그런데, 혹 하근기에서 중근기를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상근기에 뛰어 오르는 사람도 있으나 그는 퍽 귀하고 대개가 중근기를 거쳐 상근기에 오르는 도중 타락되기 쉬운 것이다. 중근기는 장차 제 자신을 그르치는 동시에 우리 회상에도 큰 화근이 될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중근기 병증과 그 말로에 대하여 예를 들며 간곡히 법문을 설했다. 법문을 받들던 한 제자 여쭈었다.

"무슨 방법이라야 그 중근기를 쉽게 벗어나오리까?"

"법 있는 스승에게 마음을 가림 없이 바치는 동시에 옛 서원을 자주 반조하고 중근기의 말로가 위태함을 자주 반성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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