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청하원에서 소태산대종사와 김태흡·상야순영 스님.
▲ 소태산대종사 당대에 간행된 〈불교정전〉.
원기25년 9월부터 소태산대종사는 교과서를 통일 수정하기 위하여 교리에 능숙한 제자 이공주, 송도성, 서대원에게 〈종전(宗典, 정전)〉을 편성하도록 지시했다. 원기26년 4월 총회 이후 편수 사무가 총무부(부장 박장식, 서기 이공전)로 이관되어 〈정전(正典)〉편수를 다시 착수했다.

원기27년 4월에 정산 송규가 총부 교감으로 전임하면서 〈정전〉 편수 업무를 전담하고 편차를 재정비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정전〉 편찬을 자주 재촉하고 감정하며 밤이 깊을 때가 많았다.

소태산대종사는 〈정전〉이 완성되자 바로 허가를 받고 인쇄에 부치라고 하며, "때가 급하여 이제 만전을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나의 일생 포부와 경륜의 대요가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나니, 삼가 받아 가져서,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이 법을 후세만대에 길이 전하게 하라. 앞으로 세계 사람들이 이 법을 알아보고 크게 감격하며 봉대할 사람이 수가 없으리라"고 했다.

〈정전〉을 출판하기 위해 관할 사무소인 전라북도 학무국 도서과에 〈정전〉 출판허가서를 신청했다. 도서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된 내용을 샅샅이 살펴본 후 원고를 반려시키고 말았다. 이유는 황도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느 모로든지 트집을 잡아 출판을 방해하려는 의도적 소행이었다. 〈정전〉 출판 문제가 난관에 봉착하였을 때 전북도경에서는 일어(日語)로 책을 내면 발간 허가를 내주겠다고 회유했다.

소태산대종사는 끝내 거부하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일본글로 인쇄했다가는 불쏘시개가 되니까, 무슨 방편을 써서라도 한문으로 토를 달고 한글로 인쇄하라."

원기26년 9월경 경성에서 불교시보사 사장인 김태흡 스님, 나청호 스님, 일본 일련종 총감 구로다 에가이(黑田惠海) 등이 호남지방 시국 순회강연 차 이리에 왔다. 강압에 못 이겨 류허일 교정원장이 나가 사회를 보고, 박장식은 강연회에 참석하여 강연을 들었다. 류허일은 강연이 끝난 후 연사들에게 소태산대종사를 소개하면서 만나볼 것을 권유했다. 류허일의 권유에 그들이 응하여 그들과 총부로 함께 와서 청하원에서 소태산대종사와 만났다.

이때 청호 스님은 "이 세상에는 없는 좋은 얼굴을 뵙게 되었습니다"고 하고, 태흡스님은 "선생님 말씀은 들었는데 막상 뵈오니 추운 날 화롯가에 앉은 기분입니다"라고 했다.

태흡 스님이 이어서 "제가 뭐 좀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힘닿는 데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무엇이나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태흡 스님은 소태산대종사로부터 정전출판에 대하여 듣고 "제가 불교시보사 사장으로 총독부 관리들과 친분이 있습니다. 전라북도를 상대하지 말고 저의 이름으로 총독부 학무국에 발행 신청서를 제출하면 혹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 이름 '정전'에 '불교'자를 더 넣어 〈불교정전〉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책임지고 출판하겠습니다."

태흡 스님은 방법을 제시하며, 경성의 박문사 스님인 우에노쥰에이(上野舜穎)에 대한 소개를 했다. 그리하여 원기27년 태흡 스님과 우에노쥰에이의 도움으로 〈불교정전〉 출판허가가 나왔다. 경성 예지동에 있는 인쇄소 '수영사'에서 인쇄를 시작했다. 정식 제본에 들어가기 전 인쇄된 페이지를 순서대로 모아서 간추린 〈불교정전〉을 박장식이 들고 총부로 내려와 소태산대종사께 갖다 드렸다. 가제본된 〈불교정전〉을 소태산대종사는 그날로 밤을 세워 읽었다.

박장식은 소태산대종사가 본 〈불교정전〉을 바로 출판사로 가져가 제본하여 원기28년 3월에 출판됐다. 그러나 출판된 〈불교정전〉은 소태산대종사가 열반한 후 그해 8월에야 총부에 도착했다.

〈불교정전〉은 원기47년 〈원불교교전〉이 발행되기 전까지 원불교의 소의경전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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