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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똥 같은 놈아'
'이 똥 같은 놈아'
  • 이현성 교도
  • 승인 2012.05.25
  • 호수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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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성 교도·영산선학대학교(논설위원)
'이 똥 같은 놈'이라는 말은 대산여래께서 허물없는 제자에게 자주 쓰셨던 표현이다. 〈대산종사 법문집 3집〉 제5편 44장에는 인후교당 이성국(李聖局) 교무님과 대산여래 사이에 마음공부의 표준에 대해서 묻고 답하신 내용이 실려 있다. 법문집에는 원기58(1973)년 10월18일에 법문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대산여래에게 이 질문을 드린 것은 하루 전인 10월17일 저녁 심고를 모신 후, 저녁10시 가까이 되어서였다고 한다. 천양원(신도안 삼동원의 부속 건물)에서 이불을 펴고 주무시려는 대산여래께 이성국 교무님은 무릎을 꿇고 마음공부의 표준을 어떻게 잡고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 여쭈었다.

그러자 대산여래께서는 막 누우셨던 이불 속에서 벌떡 일어나시면서 "이 똥 같은 놈이, 잠이나 자지, 잠은 안자고 어먼 소리나 하고 있다"라고 꾸중하신 후 그냥 주무셨고, 젊은 이성국 교무님은 뭔지 모를 억울한 마음에 뜬눈으로 그날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오후 2시경 서용추 계곡에서 대중들에게 법문하시는 자리에서 대산여래께서는 얼굴에 자비로운 웃음을 띠고, 이성국 교무님을 가리키며 "저 똥 같은 놈이 잠은 안자고 엉뚱한 질문만 하고 있다"라고 하시면서 여래를 표준으로 하는 마음공부법에 대해서 자세히 법문을 하셨던 것이다.

작년 4월부터 진행되는 대산종사 법어 편수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금년 3월 편수 회의 도중에 이성국 교무님으로부터 우연히 법문 뒤에 숨겨진 이 일화를 듣는 순간, 그날 저녁 대산여래께서 '오되 오지 않고(來而不來) 가되 가지 않는(去而不去)' 여래의 경지를 몸으로 보여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을 느꼈다. 누구든 그런 질문에는 콩이야 팥이야 이야기하면서 밤을 꼴딱 샜을 법도 하건만 대산여래께서는 이성국 교무의 순간적인 질문에도 자야 할 자리에서 법문에 끌리지 않으셨고, 법문할 자리에서 다른 것에 끌리지 않으셨던 것이다. 자야할 자리에서는 다른 것에 끌리지 않고 잘 수 있는 것이 여래행(如來行)이고, 법문할 자리에서는 다른 것에 끌림 없이 법문을 할 수 있는 것이 여래행이지 않은가?

금년 3월 한 달 동안 영산선학대학교 예비교역자들은 '선진 특강'으로 금요일마다 향타원 박은국 종사님을 모시고 금강경 법문을 받들게 되었다. 90이 넘으신 향타원 종사님께서 학생들에게 내리는 법문 중에 백장선사(百丈禪師)의 일화가 있었다.

하루는 백장선사의 법문이 끝난 후에 어느 노인이 다가와 말하기를 "저는 어느 절의 주지였는데, 깨달은 자도 인과에 떨어지느냐는 어떤 학인의 물음에 '수도를 잘하면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善修者 不落因果)라고 대답했다가,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저를 위하여 법문하여 주소서"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백장선사는 '불매인과(不昧因果, 인과에 어둡지 않다)'라는 한 마디 법문을 하였고, 그 법문으로 깨달음을 얻은 그 여우는 여우보를 벗었단다.

그런데 이 법문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해지면서 눈물이 막 쏟아지는 것이었다. 아! 나는 지금까지 겉으로는 한 번도 인과(因果)의 진리를 부정한 적이 없지만 눈과 귀와 입과 혀와 몸과 마음을 작용할 때에 그것이 바로 원인이 되어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이 진리를 왜 유념하지 못했을까? 인과를 유념하고 취사(取捨)하지 못했던 내가 바로 인과를 의심했던 것이구나!

바로 이 순간 작용하는 인과의 진리가 모여 생멸 없는 도를 따라, 수 없는 생에 작용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으니 이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의심병이었고, 내가 바로 여우였구나. 이 똥 같은 놈이 여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스승님들께서 그렇게 강조하셨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에 주(住)하는 바 없는 '동정일여(動靜一如)의 마음공부'도 실제 육근(六根)을 순간순간 작용할 때 그 작용의 결과가 호리도 틀림없이 나타나는 인과의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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