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도갑 / 행복가족캠프 지도교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경계를 만나서 화를 내고 속상해 한다. 이럴 때 참는 공부를 많이 한다. 이는 마음의 눈을 감는 것 일 뿐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은 남편 때문에 속상해 하고 아내의 잔소리에 화가 난다고 한다. 참고 돌리는 공부는 그 순간은 편안할지 모르나 경계가 오면 다시 요란해지고 반복되면 화가 폭발하기도 하며, 심하면 목석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깨어나야 한다. 속상한 것은 경계가 아니고 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 원인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어야 된다는 강한 신념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속상해 한다.

그가 돕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아내가 잔소리하면 안 된다고 저항을 하면 화가 난다. 나를 사랑하니까 잔소리하는구나 하고 판단한다면 편안할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 요란한 것은 다가오는 현실을 거부하는 자신의 신념 때문인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여 의식의 눈을 뜨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없애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신호 삼아 내면의 숨겨진 분별을 찾아서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인연간의 갈등과 아픔의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네가 말을 안 들어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다. "너 때문에 속상해 죽겠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러면서 차츰 부모님이 나 때문에 속상해 하고 나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그리고 이것이 착각인 줄을 모른 채 살았다.

평소에 하는 말 속에서도 우리는 "왜 나를 괴롭히니." "스트레스 주지 마." "당신 말에 상처받았어." 등의 잘못된 표현을 무심코 하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나를 상처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계가 아니고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하며 아픔을 주고 있을 뿐이다.

이 원리를 알아차리면 세상의 뜻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와서 교감하게 될 것이다. 원불교신문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마음일기를 보면 아직도 경계를 당해서 감정을 참는 공부를 종종 하고 있다.

마음이 깨어나서 보면 참고 돌릴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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