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교리, 모든 종교 통합·활용

▲ 우세관 교무 / 강원교구 김화교당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가 있지요? 이미지는 틀리지만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대종사는 참 친절하십니다. 원불교의 교리를 펼쳐나가기에 앞서 교단을 만드신 이유와 교법을 한마디로 먼저 밝혀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핵심 키워드는 '무상대도'

원불교 교법 선언의 배경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상대도'입니다.

우선 소태산대종사는 원불교 교법을 설명하시는데 '불교는 무상대도'라는 선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무상대도(無上大道)란 더 이상 위가 없는, 가장 높은 지고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의 불교는 지금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제도와 방편으로 펼쳐져 있는 불교가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진리로서의 불교를 뜻합니다. '여기에 근원하여 각종 각파로 분립하고 포교문을 열었다' 거나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라고 하신 점에서 보면 더욱 뚜렷해집니다.

많은 종교가 있는데 왜 하필 불교 였을까요?

당신께서 접하신 당시의 상황에서 출발하시려는 뜻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미 모든 종교의 교지를 접한 상황에서 불교에 주목한 이유는 뚜렷합니다.

불교의 '불(佛)'이라는 뜻은 '깨달음'입니다. 자기 자신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 불교입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지시'가 아니라 자신을 주체로 한 '깨달음'에 주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나 진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어서 불교가 그 깨달음을 가르치기에 최고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입니다.

소태산대종사는 과거 불교에 대한 분명한 지적을 하십니다. 한마디로 제도와 방편으로서의 불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규정합니다. 출가 승단 위주이기 때문에 원만한 대도(大道)는 아니라는 겁니다.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

그럼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흔하게 듣는 질문입니다.
교단 최고 결의기구인 수위단회에서 규정하시기를 '원불교는 새불교요, 새종교'라고 해주셨습니다.

대종경 서품 2장에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淵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하시고, "장차 회상(會上)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 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 하셨습니다.
즉, '부처님께 연원을 대고 불법을 주체 삼는다'는 선언을 하셨기에 '새불교'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소태산대종사의 깨달음은 일치하지만 서로 펼쳐놓으신 교리는 틀리지요. 그래서 '새종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시고 당시의 상황에서 모든 것은 고(苦)라고 보셨지만, 소태산대종사께서는 깨달으시고 작금의 상황에서 세상 모든 것은 은혜(恩惠)라고 보셨습니다. 개개인이 중요시 여겨지는 사회에서 개인보다는 관계가 중요시 여겨지는 사회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농경사회에 적용한 것과, 깨달음을 산업혁명 이후 물질개벽과 지식정보화 사회에 적용했기에 교리체계가 달라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법은 그 시대와 그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4제 8정도 12인연에 기초하여 교법을 펼치셨고, 소태산 여래께서는 4은 4요 3학 8조라는 교법을 펼치신 것입니다.

독특한 원불교 교리

소태산대종사께서 밝히신 '원불교의 교리'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이 크게 깨치신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원상 진리'라고 호칭하지요. 원(○)으로 그려 '일원상'이라 부르고 신앙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았지요. 우주의 운행원리와 인간 삶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우주와 인생의 원리이지요.

그런데 대각해서 보니까 사람이 세상을 진리적으로 사는 방법은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와 '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입니다.

그래서 교리로 밝히신 둘째는, 이 진리에 바탕해서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하는 방법을 밝히셨지요. '사은 사요'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셨는데 한마디로 모두를 부처로 받들자는 것인데 이것이 '원불교의 신앙'입니다.

셋째는, 이 진리에 바탕해서 나를 잘 다스리자는 것인데 '삼학 팔조'라는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하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잘 다스리는 방법이 '원불교의 수행'입니다.

즉,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진리'를 깨치신 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해야 한다' 하시며 세상의 병을 치료해 낙원을 만들자고 하셨는데… 세상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잘 다스리고', '남들과 관계를 잘 해라'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이 세 가지가 원칙이지만 종교의 근본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방법이 제시됩니다. 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를 통합 활용하자고 하십니다.

이렇게 원불교의 교리는 전개가 됩니다.

"시대에 맞는 원만한 대도의 불법으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나를 잘 다스려 남과 관계를 잘하라"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