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소태산대종사 열반 후 조실에 안치된 모습.
원기28년 5월16일, 예회가 끝나고 점심 때 소태산대종사는 조실에서 상추쌈을 맛있게 드신 후 도착한 우편물을 일일이 점검했다. 조금 후 갑자기 복통이 일어나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왼쪽 가슴이 아파 얼굴이 창백해졌다. 의사와 한의원 두 사람 모두 뇌빈혈기가 있다고 했다. 저녁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해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5월17일, 제자들은 조금 쉬고 나면 나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모두들 걱정했다. 2~3인씩 왕진을 오자, 소태산대종사는 간부들에게 대중없는 의원 초빙을 두고 "급할 때 공부심을 놓지 말아라. 뭣 하러 의사를 2~3명씩이나 부르느냐.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공부법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5월18일, 심장 압박 증세로 왼쪽 가슴이 결리고 고통스러워 안색이 창백했다.

5월20일, 학원생 일동은 반공연습을 했다.

5월19일, 에키호스찜으로 가슴을 데어 피부가 적색을 띄었고 통증이 심하여 앉아 있었다.

5월21일, 면도를 하고, 도시락으로 식사를 조금했다.

5월23일, 지금까지 미음만 들다가 밥을 비벼 먹었다. 환후는 더욱 심중했다. 금강원에서 46명이 참석하여 소태산대종사의 쾌유 기도를 올렸다.

5월24일, 천식기가 있다고 하여 모두들 더욱 걱정했다.

5월25일, 병세에 차도가 없고 점점 위중해지자 지방 교무들이 하나 둘 총부에 모여 들었다.

5월26일, 조실 면회를 일체 금지했다.

5월27일, 내과전문의가 입원을 권고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자신의 상태를 알기에 입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곡히 권유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생각하여 저녁 8시반경에 이리병원에 입원했다.

5월28일, 소변 검사 결과 신장염 증세가 나타났다. 밤에 앉아서 잠을 못 이루었다.

5월29일, 병실을 옮기자고 하여 동쪽 특실로 옮겼다.

5월30일, 딸기즙과 미음 등을 먹었다. 병세는 날로 침중했다.

5월31일, 병세가 많이 심해지고 고통으로 신음했다. 기력이 쇠약해져 몸을 자유로 못했다.

6월1일, 날씨가 맑았다가 흐려지기 시작하여 저녁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전 11시경에 병세는 침중했다. 오후 1시경에 정산 송규가 이은석에게 "병실을 회관으로 옮길 터이니 바로 가서 방을 치우고 불을 때라"고 했다.
▲ 소태산대종사의 영여 모습.
이리경찰서 황가봉 순사가 왔다. 의자에 앉아 반기는 모습이 조금도 중환자 모습이 아니어 반가운 마음으로 말했다.

"종사님, 밖에서 들은 바는 대단히 위중하시다고 들었는데 와 뵈오니 아프신 것도 안 같은데 꾀병이십니까?"

"저런 멍청이 봤나. 금방 죽게 된 사람보고 그러네."

황 순사가 나가고, 조금 후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소태산대종사가 스르르 쓰러졌다. 병실에 있던 정산 송규와 박광전, 조전권이 깜짝 놀랐다. 정산 송규가 소태산대종사의 뒤에서 상체를 그대로 부여안은 채 의자에 기대어 "종사님!"하고 다급히 불렸다. 오후 한 시 반이 넘은 시간이다. 제자들이 달려들어 침대로 옮겨 뉘였다.

14시30분경, 소태산대종사가 열반했다. 제자들이 오열했다. 모든 제자들은 넋이 나갔다.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만 들으면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오후 늦게 영구차가 총부에 도착해 유체(遺體)를 조실에 모셨다.

6월6일, 일요일 오전 10시에 발인식을 거행하고, 오후 1시에 장의행렬이 출발했다. 수도산 이리화장막에서 화장하여 이튿날 성해(聖骸)를 수습하여 조실에 안치했다.

7월19일, 소태산대종사의 종재식에서 제자들은 참을 수 없는 비참함 속에 스승님의 유업을 계승하겠다는 결연함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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