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을 체받아 대각성불 합시다!

▲ 오선명 교무 / 경남교구 문산교당
일원상의 수행은 일원상의 진리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 양성하자는 것, 사용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원불교 초기교단 시절에 소태산대종사께서 친감하시어 발간하신 〈회보〉 40호(원기22년 12월호)에 일원상(一圓相)을 모본(模本)하라는 제목의 법설이 나타납니다.

"제군은 그동안 심불 일원상(心佛 一圓相) 즉 사은의 내력을 배웠고 따라서 신앙하고 숭배하였다. 그러면 오늘부터라도 집에 가거든 그 일원상 원형(圓形)을 조그만하게 하나씩 만들어서 몸에다가 지니든지 벽에다 붙이든지 하고,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 오직 일원의 그 공(空)한 자리만을 생각하여 사심 잡념을 떼어버려라. 그런다면 곧 일원상을 체받는 것이 될 것이니 비유컨대 글씨 배우는 아이들이 선생의 쳇줄을 보고 그대로 쓰듯 그 일원의 원만무애한 모형을 본떠보라는 말이다." (이공주 수필)

일원상의 수행은 일원상 진리를 원리적인 측면에서 체(體)받아 일상생활의 일체 동정간 간단없이 마음작용을 통해 닦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매 순간마다 일원상을 체 받는 방법으로 일원상을 그려서 몸에 지닐 뿐만 아니라 마치 좌우명을 삼듯 벽에다 붙여놓고 표준을 삼게 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하기 싫은 사심이 나는 것은 일원상을 위반하는 마음이니 그런 때에는 즉석에서 그 사심을 물리치고 오직 온전한 마음으로 그 일에 전일하는 것이 일원상을 체 받는 것이요, 또는 불의의 재물이 욕심 난다든지 부당한 음식이 먹고 싶다든지 하거든 곧 그 욕심을 없애버리고 오직 청렴한 마음으로 전환 전진 시키는 것이 일원상을 체 받는 것이며, 혹은 가족을 대할 때에도 미운 데에 끌린다든지 사랑스러운 데에 끌려서 중도를 잃는다면 일원상하고는 어긋난 일이니, 오직 증애심을 놓아버리고 항상 원만 공정히 하는 것이 일원상을 체 받았다고 할 것이다. 자고로 인물도 잘난 것을 보고 원만하다 하고 일처리도 잘된 것을 보고 원만하다 하나니 원만이라는 것은 곧 일원상을 이름이니라." (이공주 수필)

이 법설에서 우리 공부인들은 일원상 수행이 곧 일원상 진리의 원리적인 수행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특히'오직 일원의 그 공(空)한 자리만을 생각하여', 또는'일원의 원만 무애한 모형을 본 떠보라'는 법설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일원상의 진리는 원만구족 지공무사 그 자체입니다. 각자의 마음이 원만구족, 지공무사하다는 것은 곧 우리의 마음이 법신불 일원상이요, 부처라는 것 입니다. 이 일원상을 표본하여 수행의 요결로 삼는 것이 일원상의 수행입니다.

견성(見性:원리를 깨닫는 것)

일원상 진리를 궁구하여 각자의 마음원리에서 오득(悟得)하는 수행입니다. 성품(性), 마음(心), 마음 작용(情), 뜻(意)의 생멸 변화 양상을 일원상 진리에 계합하여 깨닫고 터득하며, 각자의 마음자리에서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는 자리를 철저히 관조하여 절대 공(空)의 용심(用心)을 하는 것이 이 공부입니다. 또한 이해력, 판단력, 분석력, 성찰력이 뛰어나 걸림이 없고 경험, 상식, 전문성이 탁월하여 일과 이치를 바르게 보고 바르게 통찰하는 공부입니다.

언제나 온전한 일심이 마음에 자리 잡아 일과 이치 간에 빠르게 판단하고 밝게 분석하여 무애의 사통팔달한 지혜가 솟아나 그 심상에 일원상의 진리만이 자리 잡게 됩니다.

견성 공부의 측면에서 일원상의 수행은 동정 간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공(空)이 표준입니다.

양성(養性: 원리를 기르는 것)

일원상 진리를 궁구(窮究)하고 오득(悟得)하여 각자의 마음 원리에서 체득(體得)하는 수행입니다. 곧 일원상 진리의 체성을 마음작용에서 지키고 기르는 공부입니다. 견성 공부를 통해 마음 작용을 깊이 통찰하여 그 용성(用性)을 얻었다면 그 다음엔 사심잡념, 애욕탐착, 원근친소 등에 조금도 끌림이 없이 일원의 체성을 표준삼아 동정간 일상생활에서 지키고 기르며 양성하는 공부입니다.

사람의 정신은 원래 온전하고 밝은 것이나 오욕의 욕심 경계를 따라 천지만엽으로 흩어져서 그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지혜의 광명 또한 어두워지므로 일원상 진리의 체성을 표준삼아 일상(一相: 마음작용), 일행(一行:행동)간에 조금도 간격이 없이 정진적공해야 합니다.

솔성(率性: 원리를 사용하자는 것)

일원상의 진리를 자성(自性)의 원리에서 오득하고 체득하고 증득(證得)하는 수행입니다. 곧 일동 일정이 절대의 정(正)에 바탕하여 무념, 무착, 중도의 원만행이 일원상 수행의 솔성공부입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삼학에서 작업취사를 나무의 열매에 비유하셨습니다. 곧 일원상의 수행은 견성, 양성, 솔성 가운데 최종 귀결점은 솔성에 중점을 두어 공부의 실질적인 효용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교리는 현실성이 매우 높습니다. 작은 욕심을 없앨 것이 아니라 큰 욕심을 키우라든지, 오욕의 경계 속에서 수양의 큰 힘을 기르라든지, 견성만 하고 성불하는데 공을 들이지 아니한다면 보기 좋은 납도끼와 같다든지 하는 비유는 모두 참다운 공부가 현실 생활 속에서 그 실효를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솔성은 우리 모두가 본래 부처의 능력과 권리를 지녔으나 이를 잃어버리고 빼앗겨 다시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견성 양성 솔성 이 세 가지는 언어의 구별일 뿐 수행에 있어서는 동시 다발적 표준이요 상호 보완적 요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시선법은 일원상 수행의 귀결

일원상 수행은 삼대력 공부입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체 받아 일원상과 같이 원만한 인격를 갖춘 공부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시선법을 통해 동정간 틈새 없는 수행을 닦아야만 합니다. 무시선 공부는 수행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분명합니다. 내공(內功)이 쌓이지 않으면 유시 유처 공부도 보잘 것 없을 뿐만 아니라 무시선의 결과는 요원해집니다. 백제라는 본래 어질고 지혜로운 신하 100인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원불교 출가 재가 중에 법사님이 몇이며 종사님이 몇입니까? 세계를 향도하고 구원할 법기(法器)가 구름같이 모여 계십니다. 다함께 대각성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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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양성·솔성 가운데
최종 귀결점은 솔성
공부의 실질적인 효용성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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