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옥에서 체험하는 선비정신

2012 이웃종교 화합주간이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주최로 올해 처음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화합과 상생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다종교 국가로서의 우리나라가 평화적 발전상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체험마당 이웃종교스테이는 자연 속에서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 될 것이다.
본지에서는 '미리 가본 이웃종교스테이'를 기획했다. 1주 천주교, 2주 유교, 3주 한국민족종교협의회, 4주 천도교 순이다.
▲ 소수서원은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서원운동의 출발지로 유교의 고향이다.
조선시대의 통치 이념으로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했던 유교의 맥은 아직도 우리들 삶 곳곳에 묻어나 있다. 특히 명절 제사부터 계촌법(촌수), 향례 등은 전통문화로 승화돼 한국혼 기저에 면면히 흐른다. 234개의 서원과 700여 개의 향교는 오래된 미래로 현대인들과 호흡하며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2012년 이웃종교화합주간을 맞아 유교에서 준비한 것이 '온 가족 전통문화 체험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이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이 위치한 곳은 경북 영주시. 그런데 왜 유교스테이를 소수서원이 자리한 순흥면으로 택했을까. 기자가 영주시 순흥면에 도착해 유적지 탐방과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의문은 쉽게 해결됐다.

순흥지역은 한국 최초의 성리학자 회헌 안향선생이 태어났고,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 임금이 현판을 내려 사립고등교육기관으로 명함), 한국 서원운동이 시작됐던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흥지역이 유교의 고향이자 성지라는 점에서 그 위치가 특별나다. 사액서원은 임금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고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하는 것으로 소수서원은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있을 때 지정됐다.

순흥은 1413년에 도호부가 될 정도로 격이 높았지만 세조3년 금성대군(세조의 친동생)을 중심으로 한 '단종복위운동'이 이곳에서 추진되던 중 탄로가 나 부가 폐지되고, 땅덩어리는 충북 단양, 강원 영월, 태백, 풍기, 봉화, 안동으로 나눠지게 됐다. 이 정축지변(丁丑之變)을 통해 고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수되고 시신은 죽계천(백운동 계곡)에 수장되는 아픈 역사를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 영주 순흥은 올곧은 선비의 기개가 살아있는 곳으로 추앙되고 있다.
▲ 영정각에 모셔진 회헌 안향선생.
유교, 이웃종교스테이를 가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은 성균관이 직영하는 교육기관이다. 6000㎡의 너른 부지에 자연친화적인 한옥 23동이 자리하고 있어 머무는 이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고 있다. 정자와 연못, 누각과 야생화단지 등의 조경은 덤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해 준다. 150명이 동시에 숙박이 가능한 곳이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이상호 원장은 "이웃종교스테이는 기본적으로 유교의 가르침을 알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한국종교평화회의와 각 종단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세부 일정을 조정해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원장은 "유교는 서구의 전통적인 종교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며 "이번 이웃종교스테이를 통해 철학과 종교로서의 유교를 폭넓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유교 이웃종교스테이는 7월27~29일 열린다. 첫째날 프로그램은 유복배례(선비 옷을 입는 방법과 인사법)를 배우고 사군자와 유교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이 마련돼 있다. 퇴계 이황의 수련법인 활인심방은 참가자들의 심신을 이완시켜 정신을 상쾌하게 할 것이다. 밤길 걷기 명상은 소수서원의 야경과 주변의 자연을 만끽하고 뭇 생명들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

둘째날에는 전통무예인 택견을 익히고 자연염색 체험은 선조들의 지혜와 멋을 배우며 참가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공자님의 말씀을 듣는 '논어강독'과 다례, 계촌법(촌수 계산법), 성직자 특강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열림'이 될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 관광, 종가집 가옥을 그대로 재현한 선비촌, 소수박물관, S자 나무다리로 유명한 무섬마을 탐방이 진행된다.

활인심방과 택견 진행을 맡고 있는 수련원 김종만 교무부장은 "유교 자체가 인간의 도리와 생활규범을 강조하고 있어 이에 바탕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며 "사대부 대장부들이 반드시 배워 행해야 하는 6가지 덕목(六禮)인 서·악·어·사·주·수(書樂語射酒數)를 현대에 맞게 변용해 프로그램화 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의 예절교육이나 기업체 위탁교육에서도 널리 활용되는 것으로 선비문화수련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은 기본적으로 훈련교육전문기관이기 때문에 이웃종교스테이도 이에 준해 진행된다.
▲ 석전대제보존회의 유복배례 교육.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의 기능과 주변 유적지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은 일반적으로 학교나 기업체의 위탁교육, 인성교육을 주로 실시하고 있지만 성균관의 직영 수련원으로 그 역할을 병행하고 있다. 김 교무부장은 "성균관 산하 서원과 향교, 유도회, 청년유도회, 여성유도회 등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며 "향교보수교육을 비롯해 향교교원양성교육, 석전대제보존회 연수를 통해 유교 성직자 양성에 힘을 쏟고 있고 유림들의 정보교류의 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수련원이 유교의 부활을 위해 인재양성에 전념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산하 국제종교청년캠프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다른 종교에 비해 종교색이 옅고 한옥숙박 시설과 주변 관광지들이 많아 참가자들의 호응도가 높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또 수련원은 인성교육을 통한 교육의 회복을 기치로, 청소년들의 학교폭력과 자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비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로부터 위기청소년들을 위임 받아 이 시대 청소년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의 주변에는 소수서원을 중심으로 한국선비촌, 저자거리, 소수박물관, 청소년수련관, 순흥향교, 금성대군신단 등 선비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옛 절터에 자리잡은 한국 최초의 사립대학교인 소수서원은 순례의 핵심지다. 서원 입구에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어울려 있는 소나무 군락은 사뭇 절터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정축지변의 흔적은 여전하다. 그 옆으로 소혼대(消魂臺)와 백운동 계곡 경(敬)자 바위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다. 백운동 계곡의 글씨바위는 '백운동'은 퇴계가, 붉은 색 '경'자는 신재 주세붕 선생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져 온다. 특히 붉은 색 '경'자는 풍기군수였던 신재 선생이 직접 쓰고 제사를 올렸더니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서원 내부에 들어서자 강학당이 눈에 보인다. 강학당은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던 곳으로 사방에 툇마루를 둘러 놓았고 배흘림 기둥 양식을 가진 특이한 구조다. 강학당을 옆에 끼고 돌면 영정각이 나온다. 영정각은 한국 유교의 뿌리인 안향과 주세붕 선생을 중앙에 나란히 모셔 놓았다. 매년 음력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이들을 위해 제향하는 것을 보면 그 역사적 무게가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소수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과도 인연이 지중하다. 퇴계하면 도산서원을 생각하지만 소수서원에서 오랜 시간을 기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제자들도 많이 배출했다는 뜻이다.

이런 선비의 고장에서 진행되는 이웃종교스테이는 사상적인 유학(儒學)과 학파로서 유가(儒家), 종교로서 유교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옥의 고즈넉한 공간의 여유와 밤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 밤하늘의 별을 헤며 조선 선비를 체험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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