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간 150억 년을 1년으로 축소할 때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시기는 12월31일 오후11시59분59초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31,535,999초가 지나고 난 뒤 단 1초가 인간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1초는 벌이 꿀을 따기 위해 날갯짓 200번 하는 시간이며, 투수의 손을 떠난 야구공이 타자의 배트에 맞아 다시 투수 근처까지 날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생각해보니 제법 긴 시간입니다.

45억4천만 년 전 은하계의 가장자리에서 태양의 주위를 도는 작은 먼지들이 서로 엉켜 바위덩어리가 되고, 그 바위의 인력에 작은 먼지들이 충돌하며 들러붙어 드디어 지구가 생성됐다고 과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수증기 입자가 담긴 유성이 날아다니다가 지구의 인력에 끌려 부딪치는 시대가 2천만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모아진 수증기로 지구에 바다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구가 생성된 지 7억 년만 입니다.

지는 해의 잔광도 사라져 가는 서귀포 앞바다는 평온합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상상할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한 알갱이의 수증기로 비롯됨을 봅니다.

용암이 끓어오르던 지구에 바닷물이 뒤덮이고, 바다 속에서 화산이 솟아올라 대륙을 이루고, 바닷물에 녹아있던 무기물에서 생명체가 탄생되고, 익룡(翼龍)이 불을 뿜으며 바다 위를 날던 영상이 물방울 하나하나에 담겨있습니다. 그 영상의 마지막에 인간의 무지(無知)와 왜소함이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과학의 발달은 눈부시지만, 그 물질을 선용(善用)해야 할 영성은 같은 속도로 향상되지 못했습니다. 초록별 지구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겨우 그 1초 동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30억 년을 통해 정화시켜왔던 지구에 단 1세기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것입니다. 환경의 오염과 파괴는 바로 지구의 오염과 파괴였습니다. 인간이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쓰나미, 토네이도, 폭염과 폭설…. 며칠 전 영국과 러시아에 내린 폭우는 불과 수 시간 만에 월평균 강우량의 두 배를 넘게 내려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났습니다. 공상과학 영화와 같이 오염된 지구를 구하기 위한 특공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닷물에 식어버린 용암 꼭대기에 날개 접고 쉬는 갈매기의 시선에는 모터보트의 굉음에 대한 무심함이 보입니다. 마치 "책임이 너에게도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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