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체험, 영적성숙 준비하는 해탈의 시간

▲ 티벳의 예술세계와 정신문화를 알리고 있는 보성 대원사 티벳박물관.
티벳 속담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슬피 울고 괴로워했다"는 문구가 전해오고 있다. 인간의 생사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는 말이다. 티벳의 큰 스승(린포체)들이 어린 제자들에게 즐겨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의 불교왕국 티벳, 티벳의 예술세계와 정신문화를 알리고 있는 보성 대원사 티벳박물관을 방문했다. 티벳박물관장인 현장스님(대원사 주지)을 만나 티벳 사람들의 죽음의 지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티벳의 바르도(bardo)

현장 스님은 먼저 '바르도(bardo)'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바르도란 '틈새' 라는 티벳 말이다. 죽음에서 환생까지의 49일간의 중간계를 뜻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죽음이란 꿈에서 깨어남이다. 이것은 바르도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사람들은 삶이라고 하는 긴 꿈을 꾼다. 꿈의 끝자락에서 죽음으로써 그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문 하나를 통과하여 또 다른 자궁 속으로 들어가 또 한 번의 꿈 속 세상에 태어난다. 만약 사람들이 이 두 꿈 사이에서 온전히 깨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음을 정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도를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삶과 죽음의 긴 터널을 왕래할 때 그 심오한 철학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티벳의 불자들은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일 보다 죽을 날을 알 수 있도록 수행에 힘써야 한다는 스승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3보1배를 하며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다.

그는 "태어난 인간은 늙지 않을 수 없고, 늙은 인간은 죽지 않을 수 없고, 죽은 인간은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경전의 가르침을 소개했다. 결국 티벳 사람들이 온 정성을 다해 수행에 힘쓰는 이유는 '불교수행의 근본인 생사윤회로 부터의 해탈'이다. 즉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공부에 있는 것이다.

그는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보통 사람이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죽음의 순간과 다시 환생할 때까지 49일 동안의 바르도 상태라고 한다. 죽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티벳 사람들은 잘 죽기 위한 가르침을 배운다. 죽음의 과학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소중한 기회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삶의 뿌리부터 바꾸어 놓음을 알 수 있다.
▲ 티벳박물관장 현장스님.
박물관 지하 1층, 죽음 체험실

대원사 티벳박물관에서는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수련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박물관 지하1층 김지장 기념실에서는 누구나 죽음체험을 할 수 있다. 현장 스님은 한 관람객에게 "죽음을 한번 체험해 보세요"하고 권했다. 관람객은 합장을 한 후 은은한 동굴 속 불빛 아래 준비 해 둔 '목관'에 들어갔다. 스님은 다른 관람객과 함께 목탁소리에 맞춰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했다. 그렇게 5분 동안 진행 한 후 염불을 마쳤다.

죽음 체험을 한 관람객은 "염불이 시작되자 어떤 기운에 끌려 관 밖으로 한 없이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난 후 염불 소리가 작아지자 다시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는 체험을 밝혔다.

현장 스님은 관람객들에게 "사람들은 생로병사의 끝없는 윤회를 되풀이 한다. 윤회의 괴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3가지를 묵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나는 반드시 죽는다 ▷죽음의 시간은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죽음의 길에는 가지고 갈 수 없는 재산과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즉,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재산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이기심과 두려움이 점점 커진다고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죽어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을 모은 사람은 고물 자동차를 폐차시키고 새 차를 뽑아 타듯이 육신을 빠져 나와 새로운 환생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영적인 지혜를 배우고 이웃을 위해 선행을 많이 베푼 사람은 평온한 임종을 맞이한다. 이 죽음 체험실의 동굴은 저승의 구세주 지장보살님 앞에 놓여진 목관에 들어가 자신의 죽음을 묵상해 보는 곳이다"고 관람객들을 이해시켰다.

바르도의 순간(죽음의 체험)은 나와 남이 둘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이다. 또 영적 성숙을 준비하는 해탈의 시간이기도 하다.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해서

현장 스님은 "티벳 불자들은 새해 초에 오체투지의 성지순례를 한다. 온몸을 땅위에 던지면서 그 사람들이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자기의 소원이나 집안의 행복이 아니다. 조국 티벳의 독립도 아니다. 오직 육도 윤회하는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축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 사람들은 윤회하는 세계 속에서 얻은 행복과 권력과 재산 같은 것은 모두 참된 것이 아니고 괴로움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삶의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삼보(불·법·승)에 귀의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얻는데 있다"고 말했다. 육도 중생을 위한 기도로 해탈에 이르려 하는 것이다.

티벳 사람들이 이렇듯 철저한 수행을 하는 것에는 〈사자의 서(死者의 書)〉에 밝힌 죽음의 세계관도 한 몫을 한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티벳어로 〈바르도 퇴돌〉이라 한다. '퇴돌'이란 듣는 것을 통한 영원한 해탈이란 뜻이다. 즉 죽음의 순간 오직 한번 듣는 것만으로도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영원한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티벳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이 책에 익숙해 있다. 죽음의 순간, 육체적인 죽음 후에도 한동안 스승이나 영적인 선생은 그와 함께 한다"며 "그들은 사자(死者)가 의식적으로 남아 있고, 그리고 더 낮은 단계의 통로에 이끌리지 않고 존재의 밝고 투명한 빛을 향하여 갈 수 있도록 살아있는 동안 들어온 이 가르침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고 밝혔다.

〈사자의 서〉는 바르도의 전 과정에서 사자(死者)가 의식을 잃지 않고 보여지는 모든 빛과 색채, 소리와 환영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강조한다. 존재하는 모든 현상이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영원한 해탈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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