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되 소통없는 불공은 하지말자

노부부가 성격 탓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이혼 하는 날 노부부는 마지막 저녁식사로 통닭을 시켜서 먹게 되었답니다.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날개 부위를 정성껏 떼어서 할머니에게 먼저 건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크게 화를 내면서 당신은 삼십여년간 내가 싫어하는 날개 부위만 주었다고 하더랍니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자 할아버지는 나는 내가 제일 먹고 싶어하는 날개 부위를 삼십년간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 주었는데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하더랍니다.

위의 이혼 사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성격 탓도 아니고 그 어떤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소통의 부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를 갈라서게 한 것입니다.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어떤 부위를 좋아하느냐고 묻지 않은 할아버지가 야속했던 것이고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한 번이라도 고맙다는 반응이 없는 할머니가 야속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서로 사랑하되 소통부재 였던 것입니다.

이 사례를 우리의 신앙적 측면으로 본다면 불공의 문제입니다. 과거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공을 드리는 것이 불공이었다면 원불교의 불공은 살아 있는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가 불공을 할 때 불공 대상의 마음에 맞는 불공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와 같이 내가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좋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공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단장님들께서는 불공 하실 때 불공 대상의 부처님이 원하고 바라는 불공을 하고 계신지요, 단원을 사랑하되 소통이 되지 않는 불공을 하시지는 않으신지요. 단장님들께서 단원부처님께 정성으로 불공을 하는데도 그 정성에 감응이 없다면 내가 하고 있는 불공이 제대로된 불공인지를 한 번 정도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여름 휴가철입니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건강과 행복을 기원해주는 따뜻한 단장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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