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이 밝은 편입니다"
30년의 농사 기다림의 결실, 건강기능성 식품·의약품 소재로 사용

▲ 금빛 천연 도료를 뽑아내는 황칠나무는 질병의 예방과 치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박권재 대표.
아침 7시 익산에서 출발하여 땅끝 해남으로 향했다. 휴게소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후 땅끝 여객선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오전 11시30분 여객선에 승선한 후 바다와 산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노화도 산양진항 항구 터미널에 도착했다. 30분이 훌쩍 흐른 것이다. 보길대교를 지나 보길우체국에서 앞에서 만난 황칠애(愛)박권재(74)대표. 마른 체구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를 따라 고산 윤선도의 행적이 어린 동천석굴을 지나 부용마을 입구에 들어서서 얼마쯤 이동하니 저만치 격자산이 보였다. 그 주변에 그가 농사짓고 있는 황칠나무가 있었다. 13,200㎡에는 황칠나무의 푸른 잎이 바람결에 일렁거렸다. 그는 한 켠에 서서 황칠나무 밭을 바라보다 회상하듯 한마디 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충남 태안에서 멸치 잡는 어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 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진지한 자세로 황칠나무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귀를 기울여 듣다 보니 저희 집 사립문 옆에 두 그루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 황칠 농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역시 30년 전,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황칠나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주변에서도 이 나무들이 크면 황칠이 나온다는 정도로만 알았다. 그럼에도 의지 하나로 개체수를 늘려 나갔다.

"종자를 파종해서 기른 묘목들인 실생묘가 자라고 자라서 이렇게 큰 밭을 이룬 것이지요. 어린 성장기의 잎은 3∼5개 결각으로 갈라지지만 컸을 때는 둥근모양입니다. 잎은 다른 나무의 잎 보다 두꺼운 편입니다. 특별하게 관리할 필요는 없으나 실생묘를 심어 놓으면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하죠. 요즘 들어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는 감회에 젖어 있는 듯 했다. 황칠나무 농사를 지은 것에 대한 자부심인지 모른다. 최근 들어 질병의 예방과 치유 효과에 대해 알려지면서 황칠나무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웃들이 농담으로 제가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그동안의 기다림이 이제야 빛을 보는 셈이지요. 제가 볼 때는 당분간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 가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요 충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러기에 전망이 밝은 편입니다. "

그는 나무 인삼이라 불리는 황칠나무 농사를 지을 당시에는 수요를 알지 못했다. 남부지방 해안이나 섬지방에서 자생하거나 키우고 있으나 수요 범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황칠나무가 제주도·완도·보길도·어청도·진도·홍도·거문도와 보령의 연열도 등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건강기능성 식품 및 의약품 소재로 사용되거나 연구되고 있는 것도 공급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황칠나무가 건강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묘목을 찾는 분들도 있고 약용으로 쓰려는 고객들의 주문도 늘고 있습니다. 어떤 고객들은 줄기 큰 것으로 보내 달라고 하지만 나무 자체가 약재입니다. 황칠나무를 연구하는 교수님들 역시도 효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하지요. 고객들의 주문에 따라 필요량을 택배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황칠나무의 효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알려진 황칠나무의 약리학적 효능인 당뇨, 고혈압, 만성피로, 정혈작용, 간세포 보호, 전자파 흡수 등이 있는 것만 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만 아내와 함께 황칠 잎차를 통해 복부 비만에 많은 효과를 보았다는 점을 밝혔다.

"저는 물을 끓일 때 황칠 잎과 가지를 극소량 넣습니다. 항상 차처럼 마시고 있어요. 오랫동안 마시다 보니 효과를 보는 것 같아요. 고객들이 주문을 할 때는 중탕을 해서 드시면 효과가 있다고 말을 하지요. 효능을 본 고객들의 입소문도 무시 못합니다. 먹어본 고객들 중에는 며칠 만에 명현현상이 오는 분들도 있어요. 효능과 관련된 구제척인 내용은 연구 논문을 보면 될 것입니다."
▲ 수거한 황칠 진액.
그런 후 그는 집으로 이동하기를 원했다. 황칠나무 농장과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집안에도 돌담을 중심으로 황칠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는 3월에 채취한 아주 어린잎으로 만든 효소를 내 놓았다. 한잔을 들이키니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다 빨래줄에서 그의 작업 흔적이 남겨져 있는 속옷을 쳐다 보자 그의 말에 자부심이 넘쳐 났다.

"집에 있는 윗 속옷은 전부 황칠 도장이 찍혀 있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겉옷을 벗고 작업을 하기 때문이죠. 잎이 달린 가지를 자르는 작업을 하다 자연스럽게 진이 묻게 됩니다. 가지 잘린 부분이 둥그스럼하다 보니 마치 나무색 도장이 찍혀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지워지지 않아요."

황칠나무 농사를 짓는 그의 황칠도장 속옷은 훈장 아닌 훈장처럼 느껴졌다. 이 속에는 그의 오랜 농사 경험이 담겨 있다.

집에 잠시 다니러 온 그의 막내 아들 박승표(41)씨는 부친의 마음을 읽었는지 굳어서 덩어리진 황칠나무 수액을 보여 주며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권했다. 은은함이 온 몸에 배어 드는 것 같았다. 머리도 맑아졌다.

냄새 맡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안식향에 대해 설명했다.

"나무 껍질에 흠집을 많이 내지 않아도 수액이 나옵니다. 금년부터 황칠나무 액을 모아볼 예정입니다. 이런 황칠나무 수액에는 안식향의 효능이 있습니다. 이미 문헌에 알려져 있습니다만 안식향은 사람 몸을 편하게 하고 여러 종류의 역기(逆氣)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필요한 향이라 봅니다."

황칠나무에 대한 식견을 가진 그의 인사를 뒤로 하고 마치 연꽃 한 송이가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용마을에 자리한 그의 집을 나섰다.

고산 윤선도의 정취가 어려 있는 곡수당, 낙서재, 세연정을 둘러 본 후 다시 산양진항 항구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땅 끝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황칠 나무의 아련한 향기가 몸 안 가득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