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보완의 역할
정체성 재고해야 될 시점
교정원, 현장과소통

지금껏 공교육은 사회통합과 경제발전을 위한 목표 아래 획일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대안학교의 등장으로 교실내 위주의 학습보다 손으로 만져보고 발로 거니는 체험학습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원불교 대안학교도 영산성지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마음공부'를 중심으로 1982년부터 대안교육을 시작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원불교 대안학교들은 생태학습, 여행학습, 평화교육, 인문학, 자기 프로젝트, 인턴십 등 폭넓고 다양한 교육을 실시했다. 이는 기존의 학교에서 운영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교육프로그램으로 애초의 학교 교육에서 소외 받거나 부적응한 학생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대안'에서 시작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대안학교는 공교육의 획일적 성적지상주의적 부분을 보안해 실험적이지만 기존의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자는 것이 본 취지였다. 그래서 비인가의 형태의 대안학교들이 속출했고, 이후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통합적 취지에서 특성화학교라는 형태로 법제화 돼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된다.

원불교 대안학교 역시 비슷한 절차를 통해 제도권 내에 편입했다. 척박한 우리 교육계에 원불교 대안학교의 이념에 따른 교육방안 제시 역시 '대안'에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회에는 여러 종류의 '대안'적 교육의 형태들이 속출하고 있다.

교육 직거래 방식의 교육생협, 생활공동체 내의 자체적 학교, 홈스쿨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안'은 이미 많은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1대1 교육임에도 학생이 문제해결 하는데 제한시간을 두지 않는 장점의 교육생협, 공동체의 실생활 속에서 옛 마을 공동체적인 생산생활과 어우러진 변산공동체교육, 에디슨 어머니의 교육법으로 더 잘 알려진 홈스쿨링은 어딘지 극단에 가있는 '대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단의 몸부림 안에는 '대안'의 정체성이 살아있다.

제도권 안에 들어간 원불교 대안학교들. 10년 이상의 교육을 통해 커리큘럼이 안정화되고 교사진도 교육에 대한 노하우도 축적됐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대안'의 정신을 다시 불러일으켜야 될 때이지 않을까 싶다.

공교육은 국가적으로 치밀하게 컨트롤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가는 교육을 제어하지 못하고 고학력자 비정규직들을 계속해서 배출하는데 급급할 뿐이다. 아무런 대책 없는 교육 폐해 속에 학생들은 피해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안교육은 공교육의 매너리즘에서 학생들을 구출해내는 '대안'의 시도에 멈출 것이 아니라 '대안'이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더 주력해야 한다.

교육 대상에 대한 방법제시와 학교가 생각하는 '대안'적 학생상과 인간상을 먼저 상정해 보는 것도 우선돼야 할 것이다. 방향성 없이 대안적으로 생각되는 교육프로그램의 양산은 학교 자체의 정체성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다양한 '대안'을 검토 후 원불교 대안학교의 취지에 맞는 교육으로 교육 소비자들의 선택권에 확실히 어필해야 될 때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