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4(1919)년, 기미 독립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4월26일, 소태산대종사는 9인 제자에게 "지금 물질 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 하여 볼지어다. 그대들은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라"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만세운동의 함성이 잦아들던 8월11일(음 7월16일)에 소태산대종사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이 지금까지 기도해 온 정성은 심히 장한 바 있으나, 아직도 하늘을 움직이는 데는 그 거리가 먼 듯하니, 그대들이 사실로 인류 세계를 위한다고 할진대, 그대들의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만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그 일을 실행하겠는가" 하시니, 제자들이 일제히 "그러하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소태산대종사, 크게 칭찬하시며, 이에 10일간 치재를 더하게 하시어, 다음 기도일(8월21일)을 최후 희생일로 정하고, 그 날 기도 장소에 가서 일제히 자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사무여한(死無餘恨·죽어도 한이 없다)의 기도는 법계로부터 인증을 얻어 교단 창립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9인의 제자는 스승 찾아 헤매는 청년, 이웃 마을의 시골 훈장, 궁촌변지(窮村邊地)의 평범한 시골 농부와 가족(외숙, 조카, 동생 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소태산대종사의 지도 아래 창생 구원을 위한 기도와 법인성사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곧 다가오는 법인절(8월21일). 93년 전 뜨거운 여름 밤, 인류 구원을 위해 자결을 약속하던 밤처럼 영산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소태산대종사가 9인 제자들에게 기도하게 하신 이유는 오늘날에 더욱 뚜렷이 다가옵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에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고, 각자의 몸에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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