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께는 '솔성(率性)'에 대해, "천도에 잘 순응만 하는 것은 보살의 경지이고 천도를 잘 사용하는 것'이 부처의 경지다"고 하셨다.(불지품 6장) 원불교의 솔성은 '성품에 바탕해서 육근을 활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교리적으로는 계(戒), 작업취사에 해당한다.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취사하는 주의심을 갖는 것이 유무념 공부이며, 계문이 버려야할 '사(捨)'에 해당한다면, 솔성요론은 '취(取)'에 해당한다. 교서에 담겨있는 작업취사의 내용 중에서 '솔성'을 공부하는데 기본이 되면서도 대조하기에 간단한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 '솔성요론'이다. 따라서 솔성요론은 작업취사와 관련한 일반적인 내용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계문이나 유무념 대조 등의 형태로 수행돼야 한다.

〈정전〉, 〈대종경〉 등에서 중복해서 언급이 되고 있는 대부분의 조목들과 달리 1조, 2조는 다른 곳에서 특별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1조인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는 과거의 '인격신앙'을 '진리신앙'으로 바로잡아 주신 조목이다. 과연 인격신앙과 진리신앙은 다른 것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할 때에는 그 분의 정신이나 가르침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사람(부처님이나 대종사님)을 믿는 것'과 '법(부처님이나 대종사님의 정신이나 가르침)을 믿는 것'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대종사께서도 "우리는 법신여래와 색신여래를 같이 숭배한다"고 하셨다.

나누어 본다면, '사람'이라는 것은 화신불(비록 진리 그대로 화현한 정화신불이라 할지라도)이기 때문에 중생들의 분별심으로 인해 신심이 흐려질 수 있지만, '법(법신불)'은 영원불멸하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으로 문제가 없다. 사람보다 법을 더 믿으라는 말이지 사람을 믿지 말고 법만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2조인 '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을 것이요'는 사도(邪道)가 아닌 정법(正法),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법'을 믿으라는 말이다. 문제는 모든 법(종교)이 정법임을 표방하기 때문에 '제일 좋은 법'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원불교가 법은 정말 좋아!" 하시는 분들이 많다. 좋다는 말은 비교 개념이다. '제일 좋은 법'인 것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의 교리에 정통'해야 한다.

이는 출가위의 경지이다. 무엇이 좋은지, 얼마나 좋은지, 바른 신앙과 수행을 통해 우리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 교법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조목이다.

대산종사께서는 "삼십 계문을 범하는 것은 지옥으로 이끄는 사자요 솔성요론(率性要論) 16조를 실천하는 것은 극락으로 이끄는 사도(使徒)이다"고 하셨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성불에 이르기 위해서는 견성, 양성 후에 솔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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