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 선진의 창작물, 내용과 구성 탁월해
산문과 운문의 조화
문학적 방법론으로 작용

▲ 이혜화 교도.
종교와 문학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많은 종교가 말과 글로써 그 교리체계를 남겼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시키기 위해 문학의 방법론을 이용했다. 이는 종교와 문학의 상관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얼마 전 종교와 문학의 관계를 동일선상에 올려 놓고 한 권 책을 내놓은 작가가 있어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원불교의 문학세계〉를 발표한 저자 이혜화(70) 교도다. 말복이 지나고 긴 더위도 스스로 맥이 풀릴 무렵,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는 저자는 노루목로 '용봉재'라 칭한 자신의 글방에서 노학자 특유의 차분함으로 손님을 맞았다.

그는 이미 21년 전에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라는 책을 통해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문학의 특징들을 먼저 밝혀 놓은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불교의 문학세계〉는 앞선 저작의 연속물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 작업에서 대상은 9인 선진이다. 내용은 그들의 문학의 개개 평가와 그 의의로, 시기는 해방 이전 1945년까지로 좁혔다. 또한 폭넓은 종교문학에 대한 정의와 그 안에서 원불교문학의 정체성에 대해 다뤘다.

이 작업은 단순히 〈교전〉이라고 해서 아무 의심없이 올려다보기만 하는 시선이 아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교전〉과 원불교 교단사에서 문학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텍스트들을 바라보는 작업이다.

"내 전공이 고전문학이다보니 대종사님의 가사문학에 자연스럽게 눈이 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부전공 쯤으로 여기던 대종사님 연구가 나중에는 역전돼 주연구 분야가 됐죠. 예전만 해도 문학가로서의 대종사님에 대한 견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불교가사 시론〉을 발표함으로써 '원불교가사'란 용어를 문학계에 등재시킬 수 있었고, 더불어 〈원불교 교전〉을 문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죠."

그런 그의 첫 번째 노력의 성과물이 바로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이다. 이 결과물에서는 소태산의 가사와 선시 그리고 문장에 대해 다뤘다. 특히 문장에서는 일원상서원문, 참회문, 조선불교혁신론, 감응편 등을 대상으로 다뤄 문장 구조, 표현과 문체에 대해 파헤쳐 좀 더 문학적인 입장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원불교 문학을 정리하다 보니 9인 선진의 몫을 간과할 수 없었던 것. 그의 원불교문학의 역사정리에 따르면 교조문학기(1916~1924)를 거쳐 '불연문학기(1925~1945)', 즉 소수인 참여기로도 나뉘는 그 기간을 책으로 담은 성과물이 이번의 〈원불교의 문학세계〉이다. 이 시기는 불법연구회를 중심으로 주로 월말통신, 월보, 회보 등 교단 정기간행물을 통해 발표됐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다뤘다.

"원불교 초기 문학은 아마추어 문학에 가깝습니다. '수도하는 사람이 관심과 공부가 갈라지면 크게 대성하기 어렵다'는 소태산의 말도 한몫 거들었을 테죠. 9인 선진들 스스로의 마인드도 '문학 할 시간이 있으면 수도를 하자'에 쏠려 있었습니다. 교단 초기여서 더욱 문학을 따로 배우고 힘쓰기에는 무리였죠. 특히 '교화'를 목적 삼거나 전제를 두고 지어졌기 때문에 순수한 문학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인선진의 창작물들은 문학으로서 내용과 그 구성이 탁월합니다."

이는 소태산이 애초에 교화의 방법론으로 '가사'창작을 권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와 같은 방법은 소태산의 독창적 방법은 아니다.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가 먼저 가사를 교화의 방편으로 시도했다. 소태산은 탄식가, 경축가, 권도가, 회성곡 등 모두 14편의 가사를 남긴다. 종지에는 교조로서 비교를 거부하는 문학적 성과를 이끈 것이다.

"소태산대종사 방언공사 시절부터 문학은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고된 작업후 저녁을 먹고 설법을 펼치실 때는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대중의 귀를 사로 잡은 것이 바로 가사며 창이죠. 대각이후 일 년도 되지 않아 가사와 판소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소태산은 일찍이 문학의 효용성을 간파한 것입니다. 이처럼 운문과 산문의 완급조절을 알고 이용한 곳은 원불교 뿐만이 아니죠. 〈금강경〉, 〈삼국유사〉, 〈사기〉 등도 이미 운문과 산문을 동시 배치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흔히 목사님의 설교가 산문의 긴 호흡으로 서술되다가 갑자기 찬송가를 부르게 만들며 듣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들곤 합니다."

결국 서술과 노래, 즉 산문과 운문의 조화가 원불교문학과 교화현장을 주도하는 문학적 방법론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는 이런 기술적 방법론 속에서 과연 '원불교문학'은 도대체 다른 여타의 '종교문학'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물음에 접어들게 된다. 또 '종교문학'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에 대한 큰 질문, 즉 화두를 꺼내 놓는다. 그리고 나름의 의견도 제시했다.

"저는 맨땅에 곡괭이를 꽂는 심정으로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허술하고 간격이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단 세상에 꺼내 놓으면 후학들이 학문적으로 나아가는데 막막함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죠. 또한 많은 이들이 내가 생각한 '원불교문학'에 대해 반박도 해주시고, 일정부분 동의도 해주시며 어떤 리액션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서인지 반응이 적어 약간의 실망감도 뒤따랐죠."

그가 말하는 '원불교문학'은 재가 출가 교도가 썼다는 것에 기준 삼아 원불교문학으로 치부하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다. 꼭 교도가 아니더라도 '작품의 흐름을 압도하고 주재하는 사상'이 원불교 사상인 것을 첫째 항목으로 잡았다. 텍스트의 내용은 전혀 원불교를 떠안지 않았지만 저자의 소속만 보고 쉽게 '원불교문학'으로 편입시키는 현실의 양태를 고발하고 있는 듯 했다. 또한 원불교 교단에 만연한 마치 문학이 종교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시녀'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경계했다. 대신 문학이 가진 자족적 가치와 기능을 인정하여 '반려'로서 자리매김해줘야 세계적인 원불교문학이 탄생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종교의 존재방식은 문화자체입니다. 유교가 종교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불교 문화재 위에서 이렇다할 문화재 없이 스러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죠. 건축에서부터 생활양식까지 어느 곳 하나 원불교라는 정체성이 스며들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원불교 문화가 꽃 피우고, 원불교문학은 그것을 담아내야 하죠. 이를 위해 기존의 문학을 정리해 학문적 토대를 만드는 이론문학의 작업도 소중합니다. 창작문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타종교 문학과 긴 시간차를 쉽게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는 메시지와 함께 "현대의 100년은 과거의 100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상기하고 고삐를 늦추지 말 것을 강조했다.
▲ 작가의 노루목 '용봉재' 작업실.
■ 저자 약력

·1943년생.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 출생.

·198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 과정 수료.

·2005년 2월 화수고등학교 교장으로 40년 교직 정년퇴임.

■ 출간된 책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 동아시아, 1991

<용사상과 한국고전문학〉, 깊은샘, 1993

〈소태산 박중빈>, 동아시아, 2004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2007

<미르>, 북바이북, 2012

<원불교의 문학세계>, 원불교출판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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