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생명체의 눈높이로 볼 수 있어야

지금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달라져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실제 피부로 접하는 기후변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느껴오는 위기의식은 기존 자연에 대한 우리의 정복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를 각성하게 만든다.
또한 자본시장에도 친환경 제품이라는 한 축이 생겨나기 시작해 본격적인 관점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에 발맞춰 본지는 '자연과 만나다'라는 주제 아래 3주 동안 '사람, 책, 스토리텔링'을 부제로 자연에 대해 다뤄나갈 예정이다.
▲ 식물도감 〈한국의 나무〉 저자 김태영 씨.
▲ 우리나라 및 일본 도감을 참고한 흔적.
많은 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채 살아간다.

또 어떤 이들은 사회와 격리된 채 극단적으로 자연 속에서만 살아가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 현명할까?'라는 물음 속에 몇 가지 대안이 머리를 스친다. 인공적으로 가꾼 정원에서 자연을 즐기기도 하고, 또 숲이 가까운 곳에 주거를 정해 자연을 곁에 두기도 한다. 숲 또는 도시, 도시 또는 숲인 이분법적으로 갈린 곳에서 우리는 종종 과거 자연과 어우러진 공동체의 향수를 언급하기도 한다.

여기 어떤 이보다 적극적으로 '자연과 만나는' 이가 있어 그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작년 말 출판된 〈한국의 나무〉(돌베개)라는 식물도감의 공동저자로 더 잘 알려진 김태영(47) 씨가 그 주인공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였지만 정기적으로 출몰(?)하는 지역은 의외로 서울 잠실 부근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시선임에도 자신의 뚜렷한 가치관을 실어 보내는 첫인상이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자연을 스승으로 삼은 사람의 힘이였으리라.

그의 큰 화두는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였다.

"자연파괴의 주범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의 오만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조금은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바라봐야 하죠. 우리는 우리 모두를 '사람(호모 사피엔스)'이라고 칭하면서도 모두가 각자의 생김새는 천차만별이듯이 산에 있는 나무들도 그렇습니다. 각기 개성을 존중하고 생명 전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면 우월한 존재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만 알게 되면 자신이 그것에 대한 조물주가 되는 양 오만해져 다 아는 척 하곤 하죠. 우리는 숲에서 그들의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단순히 우리가 자연의 지배자로서가 아니라 같은 생명체의 눈높이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산의 황령산을 오르내리고, 소년 시절엔 스카우트 활동으로 산에서 야영하는 등 늘 산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던 것이 20대 후반부터는 '미친 듯이' 산을 다녔고 심지어 암벽과 빙벽 등반까지 마스터했다.

그런 그에게도 하나의 분기점이 있었다. 산에서 만난 한 사람과 대화 도중 '숲과 산에 대해 아는 게 뭐냐?'는 물음을 받은 것이다. 등산로와 등로시간, 샘이 있는 곳의 위치 뿐, 풀 이름 나무 이름 하나 아는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산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위해 가방엔 등반장비 대신 도감과 사진기가 채워졌다.
▲ 저자가 추천한 식물, 등칡-낙엽성 덩굴식물로 파이프 모양의 노란 꽃 생김새가 눈길을 끈다.
"나의 자연관은 불교적인 세계관과도 통할 것 같습니다. 생명들 각자가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는 것 같아요. 나무라고 해도 나무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나무에 기대 살고 있는 곤충들도 여럿이며 또 그 곤충을 먹이 삼는 새들도 존재합니다. 나무만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합적이고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 인연의 끈을 이해하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이런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아주 간단한 사실도 자연 속에서 몸으로 얻었을 때 울림이 크다고 전했다. 하물며 생물학 교과서 첫 장에서나 확인 가능할 법한 결과를 그는 황무지 위에서야 진정으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원도 영월 척박한 황무지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곳은 나비종이 많아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대체 이런 황무지에 이렇게 많은 나비들이 살고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는 강원도 일대를 조사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 조사를 통해서 가장 척박한 그곳이 바로 가장 식물의 종이 풍부한 곳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양한 식물이 사는 곳에 풍부한 곤충들이 서식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그제서야 진짜로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실제적인 앎은 머리로 아는 앎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일침했다.

"생물학에서 고등생물의 한 종의 영고성쇠는 150여 만년 정도의 삶의 사이클을 두고 생멸의 주기를 보이죠. 하지만 최근 들어 사람의 영향으로 그 종만의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종이 여럿입니다. 특히 '난초' 같은 경우는 성공적으로 진화한 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영향으로 희귀종이 많은 편에 속하죠. 지구 온난화로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점차 고지대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임종을 경건하게 지켜봐야 되는 입장입니다. 스스로 스러져 가는 종에 대해선 의견을 제시할 순 없겠지만 그들이 위태로운 이유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라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몇 군데 거점들을 중심으로 자주 자연을 탐방 했다. 그 거점으로는 제주, 강원도 설악의 태백이나 정선, 전남의 완도와 해남, 남해는 거제도가 있다. 이외에도 그의 발이 거쳐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지만 그는 정작 서울에 살았다. 그도 지방에서의 자연과의 삶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 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해야만 행동반경이 넓고 편리하다는 이점을 이야기했다.

한창 산에 미쳐 있을 때는 직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꼬박 4일을 산에 갔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 많은 곳을 둘러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가 가보지 못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이 많다며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설렘을 전했다.

"저는 유독 버드나무에 관심이 많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는 흔한 나무지만 식별도 많고 자연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죠. 물속의 잔뿌리들은 치어들의 삶의 공간이고, 나뭇가지는 새들의 보금자리, 그리고 홍수 때는 1차적 방어선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미적으로는 아름다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무죠."

이를 봐도 그의 자연에 대한 애정이 사치가 아니라 알뜰하고 실질적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굳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이 아니어도 자신의 가까운 자연에서도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넓이의 감동도 좋지만 깊이로 인한 감동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그는 "자연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사회의 개개인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자연의 몇 가지의 끈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세계는 이런 개개인이 사유하는 그 끈들을 다 포함한 더 큰 전체다'며 자연을 통해 인연의 끈을 공부하고 그를 통한 즐거움 얻기를 바랐다. 이는 생태분류도 좋지만 자연을 통해 인연의 끈을 공부하는 즐거움 속에서 '깨달음'의 한 경지까지 이르고자 하는 그의 자연관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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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주거지로 하며

전국 각지

식물 자생지 거점으로

자연과 함께 한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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