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진 교도 / 통영교당
나는 중학교 1학년 겨울,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열반으로 교당 천도재를 지내게 되면서 원불교와 인연이 시작됐다. 그 인연으로 우리 가족 모두는 입교하기도 했다.

전생에 나는 어떤 큰 복을 지었는지, 그 이듬해 봄, 우연히 집에 혼자 있던 나는 교당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고, 그 주부터 학생법회를 쭈욱 다니게 됐다. 엄마는 교당을 다니시진 않으셨지만,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 가는 딸을 보시고는 매주 보은금도 챙겨 주시고, 마음으로 후원해주셨다. 그 덕분에 학교 공부 때문에 법회를 빠질 법도 한 중3, 고3 때도 매주 법회를 다녔다. 매주 법회로 인해 좋은 영향을 받으면 받았지 성적에 나쁜 영향은 전혀 받지 않은 것 같다.

이후 교당 학생회장도 했었고, 대학교에서도 교우회 창립 준비를 계기로 원대연 임원 활동도 했었다. 교당 청년회장, 그리고 교구 청년회장도 맡았었다.

20대에는 뭐든 자신만만했던 것 같다. 주위에서 전무출신 하라는 제의 내지는 강력한 추천을 받아왔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난 교도가 아닌 사내 연애로 결혼을 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고 일원가정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데 첫 아이를 낳고 법회에 나가기란 참 힘들었다. 남편교화가 되지 않은 것도 조금은 작용한 듯하다. 육아 관계로 교당 법회는 2순위 또는 3순위로 밀려났다. 띄엄띄엄 나가던 법회도 둘째가 생기면서 아예 쉬어버리고, 교당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니 내 마음은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육아'라는 단어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5세, 3세 두 아이의 엄마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단어는 우선, '긴~어둠의 터널'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아주 많이 성장해 왔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살림 등 이들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들이며,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가져다 줬다.

법문과 설법에 목마를 때에도 현실 앞에선 언제나 육아와 살림이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안타깝지만,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 해도 '매주 법회'는 정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다섯 살 난 첫째 혜윤이는 어린이 법회를 다닌다. 아니, 아직까지는 엄마와 있는 것을 원해서 가끔씩 어린이 법회를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혜윤이는 일요일 마다 엄마랑 손잡고 교당을 같이 간다는 자체만으로도 교당 다니는 것을 아주 기다리고 좋아한다.

혜윤이가 빨리 적응하면 그 다음에는 천방지축, 엄마따라쟁이 세 살짜리 아들 하준이를 데려갈 계획이다. 그 다음 순서는 남편. 세 가족에게 마음공부의 참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우리 교당은 유아부터 초등 6학년이 함께 어린이 법회를 본다. 교무님께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법회를 진행하시는데 어려움이 있으실 법도 한데, 항상 밝은 표정으로 능숙하게 이끌어 나가신다.

요즘은 마트나 백화점, 식당 등 어디를 가도 30대 여자, 특히 한창 육아와 살림에 젖어있는 주부를 배려하고 우대하는 곳이 많다. 그리고 잘되는 가게를 보면 유아를 위한 시설이 있거나 배려하는 물품을 준비하는 곳이 보통이다. 어쩌면 내 기준과 내 시선에서 본 것일 수도 있다.

교당에서도 유아부와 초등부로 나누어 법회를 본다면 각 대상에게 보낼 메시지와 주어질 활동들이 더 적합하게 이뤄지지 않을까, 나아가서 교화의 효과도 극대화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물론 유아를 돌볼 수 있는 교화자 확보와 법회 참석 숫자가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개 교당마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이들에 대한 교당 구성원들의 관심과 배려는 필요한 부분이다. 교화에 있어 눈높이가 다른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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