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의 개념이나 원리를 아는 길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방법들 중에서 두 가지를 들면 과학적 방법과 종교적 방법이 있다.

과학적 방법을 보면, 주야란 밤낮을 말하는 것으로 주야가 생기는 원인은 지구의 자전 현상 때문이다. 지구가 24시간 자전을 하면서 태양을 마주보면 낮, 태양을 등지면 밤이 된다.

종교적 방법을 보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어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구약〉, 창세기 1장)고 했다. 기독교에서 주야는 신의 창조론과 관련되는 것이다.

인도 철학에서도 주야 개념은 창조적 의미로 새겨진다. 베단타 철학의 브라흐마 신은 세계 창조로부터 파괴에 이르는 기간을 '일겁(kalpa)'이라 부르며, 이는 브라흐마 신에 있어서 하루의 낮(晝)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루의 낮이 지나면 이 낮과 같은 길이의 브라흐마 신의 밤(夜)이 오며, 이때에 비슈누 신은 잠들어 있게 된다. 이러한 우주의 밤이 끝나면 비슈누는 깨어나서 브라흐마 신으로서 세계를 다시 창조하고 브라흐마 신의 낮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종교적 방법이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오는 경우가 있었으나, 근래는 과학적 방법이 정설로 수용되고 있다. 곧 밤과 낮의 원인이 되는 태양과 지구의 순환에 대한 상반적 견해를 들 수 있다. 기독교에서 믿어오던 천동설에 대하여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여 곤욕을 치른 경우가 이것이다.

동양의 지혜를 빌리면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주야는 음양 단위로 변통(變通)하는 이치를 말하여, 주(晝)는 양으로써 야(夜)는 음으로써 일음일양(一陰一陽)하여 우주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장자〉 '천도편'에서도 주야의 이치는 하늘의 덕(天德)이 작용함이라 하였으며, 주야가 있음으로 인해 구름이 운행하고 비가 온다고 했다.

〈주역〉이나 〈장자〉에 있어서 주야는 우주 변화론과 만유 생성론으로 접근된다.
원불교에 있어서 주야는 우리가 터득하며 살아가야 하는 방법 두 가지로 인도해 준다.

첫째, 우주 '변화'의 원리를 알아 해탈하라는 것이다. 우주 변화의 이치에 따라서 생사 순환의 이치가 주야와 같다(〈대종경〉, 천도품 5장)고 했다. 이러한 주야 변화의 원리를 통해 인생 무상을 터득하라는 뜻이다.

둘째, '적공'의 시간 개념이다. 김남천 선진은 〈월말통신〉 7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어느 때에 암탉이 병아리 깨는 것을 보았습니다" 라며, 주야를 쉬지 않고 20여 일을 궁글린 후에 마침내 결실을 얻는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적공을 하라는 뜻이다.

해탈과 적공,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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