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목 118항목과 137항목까지는 대체로 우주변화, 만물생성에 관한 것으로 소태산대종사의 '관천기의상'과 연결된다. 깨달음이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모계포란(母鷄抱卵)처럼 성자의 부단한 의두를 통해 큰 깨달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7세부터 우주 대자연에 대한 의심의 발단에서 26세에 깨달음으로 이른 것은 소태산대종사의 구도의 긴 자취인 셈이다.

본 문목에서 언급하는 '조수왕래'는 달과 지구의 인력관계로 형성된다. 즉 바다의 수심을 적용시켜보면 달의 인력이 지구의 바다를 굴러가도록 당기는 것과 같다. 이때 수심이 얕은 바다가 달의 인력에 쉽게 끌려가서 조수 왕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의 인력이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기므로 달이 떠 있는 방향으로 바닷물이 끌려가는데, 그로 인해 달에 가까운 쪽은 바닷물 수면이 높아진다.

따라서 지구에는 조수왕래가 하루에 두 번씩 생긴다.

또 바다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조수왕래, 즉 조수 간만의 차이가 달라지므로 만조 시간과 간조 시간의 차이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해안의 매립지에는 에너지가 발생하므로 친환경적인 풍력발전소 내지 조력발전소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서해와 동해의 경우에 확연히 나타난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아 달의 인력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며, 이에 대해 동해안은 수심이 깊어서 지역적인 차이로 인해 조수 간만의 차이가 적다. 비유컨대 멕시코만은 바다의 수심이 깊어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적다면, 보스턴은 바다의 수심이 얕으므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커지는 원리와 같다. 이처럼 조수 간만의 차이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생긴다.

전남 영광은 서해안에 위치해 있는데 소태산은 농촌과 산촌, 어촌을 겸한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므로 조수가 왕래하는 자연의 변화에 대하여 궁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의심에서 인간사에 대한 의심으로 확대되면서 소태산은 우주 대자연과 인간 자성의 원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영광 일우에서 소태산은 기적을 이루었으니 길룡리 간석지 방언사업이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클 때, 즉 만조 때보다는 간조 때에 주로 간척사업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밀물 때보다는 썰물 때 언답을 쌓음으로써 방언역사가 다소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대산종사는 이에 말하기를, 춘하추동 생로병사 조수왕래가 있으니 이를 보고 "성현은 지혜가 어두워지면 밝게 하는 능력이 있다"(〈금강산의 주인〉, 103쪽)라고 했다. 하늘은 왜 푸르며, 조수 왕래는 왜 하는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의두 연마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으니 깨달음이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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