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정은 교도 / 궁동교당
2년전, 여고생이 된 딸아이가 '교당에 나가고 싶다'는 말에 각 교당에 전화문의와 방문을 하여 학생회가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학생회가 운영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교당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청소년기를 거치게 되고 인생을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청소년 시기임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 종교단체에서는 종교교육을 통해 건전한 도덕윤리와 올바른 인성, 건전한 가치관과 인격 형성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다.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장을 돕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단에서는 청소년교화활동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교화에 관심을 갖고 힘써오고 있는 출가 재가교도가 있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 건 왜일까? 누구나 청소년 교화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부딪치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첫째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원금이 없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자리에서 교당에 청소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려면 토요일에 교당에서 공부도 하고 문화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잠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려면 먹이고 재워야 하는데 그 경비는 어쩔거며 또 누군가 그들을 지도 감독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교당이 없다. 청소년 교화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먹으면서 정든다는 말이 있듯이 먹으며 부대껴야 한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야 하고 마음으로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왜 누군가가 그들 옆에서 지도감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내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청소년 스스로 문화를 만들고 즐기고 교당에서의 예절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주면 안될까?

청소년 교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알아야 한다. 전문지식을 갖추고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원하는 건 무엇인지 어떤 문화를 즐기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만 인력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회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청소년들에게는 그들만의 문화를 공유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각 교당이 그들의 공간이 돼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365일 교당의 문이 열려있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학업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하며, 누구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쉴 수 있어야 하고 추운 바람을 피해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건물의 구조적 문제나 혹은 생길지 모를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문을 닫아놓는다는 건 편리주의에 의한 행동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딸아이의 경우처럼 친구관계에서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빌리려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공부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이는 자아 존중감에 악영향을 준다.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기에 겪게 되는 여러 가지의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을 갖춘 출가재가교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열린 마음, 열린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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