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유리되어 있던 과거 불교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대종사께서 제시한 원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가 '영육쌍전(靈肉雙全)'이다. 영(靈)이 마음, 정신, 도학, 진리, 체 등이라면, 육(肉)은 육신, 물질, 과학, 의식주, 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신 개교표어와 사대강령 중 불법활용, 과거불교의 폐단을 지적한 교의품(1장) 등에 나타나 있는 영육쌍전의 정신은 원불교법 전반에 흐르고 있는 대종사의 핵심 사상이다.

영산선학대 시절, 종법사님 앞에서 감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천도품 17장을 인용해서 영원한 나의 소유는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종사께서는 공부인들에게 분수에 맞는 의식주는 취하고 때로는 피로의 회복을 위하여 소창(消暢, 심심하거나 갑갑한 마음을 풀어 후련하게 하는 깔깔대소회 등)도 하라고 말씀하셨다.(교의품 33장) 원불교는 과학문명을 도외시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문명을 선용하기 위하여 정신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경의편 2장) 영육쌍전은 우리의 생활과 수도에 있어 육신과 물질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했다.

영육쌍전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보다 '원불교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불교 내에서 조차 정남과 정녀를 우대하는 정서가 있고,(교단품 16, 17장) 동시에 '반무출신'이라 하여 결혼한 남자교무를 하시하는 분위기도 있다.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도 말투와 행동을 함부로 하게 된다. 도(道)가 옷이나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회색 옷을 입고 삭발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마음을 챙기는 데 도움이 된다.

깨친 사람이야 결혼이나 삭발 여부가 수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범부 중생들은 환경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영육쌍전(수도와 생활의 일치)을 제대로 실천하면 '불법의 생활화'가 되지만, 어설프게 하다가는 '불법의 세속화'에 빠지기 십상이다. 각별히 주의할 일이다.

천주교의 봉쇄수도원이나 성철스님 같은 분들은 생활과 수도가 철저히 분리된 속에서도 나름대로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물리적 공간' 등의 겉모습만 본다면 이는 영육쌍전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법에 대한 태도와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조금은 다르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활발하게 대중교화를 하고 있는 법륜스님 같은 분들도 필요하지만, 최근 번잡한 한국에서의 포교를 접고 수행을 위해 독일에 정착한 현각스님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영육쌍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출가 수도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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