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 공부삼아 양성하고 보은자 되자

▲ 장오성 교무 / 경기인천교구 송도교당
'당하는 그곳마다 불공을 하라' 이렇게 사은신앙 하나면 완벽한 불공법이 될법한데 왜 굳이 '사요'라는 신앙을 사족처럼 두셨을까? 대종사님께서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 점을 유념해 보신 것 같다. 누구를 대하거나 부처님으로 모시는 행위만으로는 사회 속의 규범과 고정관념, 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까지 해결해주지 못한다. 사요는 이런 의식, 규범, 문화, 시스템까지 바꿔서 인류 전체의 삶을 고르고 빠르게 진급시키며 부처인 존재들이 고통받지 않고 온전해지도록 인도하는 대사회 불공법인 셈이다.

자력양성은 모든 사람들은 본래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충만해있는 부처들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여자니까, 남자니까, 어리니까, 큰아들이니까 어찌어찌 해야 한다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힘을 갖게 된다.

자력을 양성한다는 것은 내가 자력으로 살도록 노력한다는 부분과 관계인들에게 자력생활을 권장하고 길러주는 두가지 부분이 결함없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남에게 의지해서 쉽게 삶을 살아가려는 습성을 버리고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온전한 주체가 되어 개인적,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빠짐없이 이행하며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아울러 주위의 관계인들에게 자주적인 힘을 길러주고 생산활동을 하도록 하며, 가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습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특별한 이유없이 스스로 자력생활을 하지 않거나 남의 자력기르기를 방해하고 빼앗는 모든 행위들은 배은행이 된다.

모두가 본래부터 자력이 충만한 존재라는 믿음을 부인하고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남녀에 대한, 장자 차자에 대한, 노소에 대한 다양하게 형성된 고정관념이야말로 본래 부처로서 온전한 인격과 온전한 역량을 갖춘 자력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킨다. 그 사회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의식의 틀을 변함없는 진리처럼 여기면서 그것에 의해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차별행위들이 있다.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의식과 행태가 잘못이라는 인식을 하기도 어렵다. 남자는 이런걸 해야해, 이런건 여자가 해야지, 이런건 어린 사람이 해야지, 나이 많은 사람은 이래야 하는데, 무슨 남자가 그런걸 하나, 큰아들은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하는 등 우리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고정관념으로 인해 자력양성을 역행하고 살아간다. 말하자면 배은하며 사는 것이다.

특히 우리 한국사회에서 부모들의 자녀양육 태도나 의식이야말로 자력양성을 저해하는 매우 크고 근본적인 요소가 된다. 영국인 부모와 한국인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관찰 실험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자녀들에게 어떤 상황이나 문제들을 준 후 해결하게 하고 부모는 옆에서 지켜보도록 하는 실험이었다. 영국인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문제를 풀지 못하고 힘들어해도 옆에서 지켜보며 계속 기다려준다. 잘못하는듯이 보여도 간섭하거나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녀양육의 기본 이념은 자율적인 인간이 되어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힘을 길러주는 데에 있었다.

반면 한국의 부모들은 빨리빨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녀가 답답해서 기다리지 못하고 윽박지르거나 간섭하거나 대신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의 부모들에게 자녀양육의 기본 태도는 남들에 비해 얼마나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가와 안쓰러운 마음에 자녀가 힘든 것을 대신해주려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한국의 초등학생 아이는 부모가 몇 번을 깨워야 마지못해 일어나며, 씻고 옷입고 머리 빗고 밥먹고 소지품을 챙기는 모든 과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가 대신해 주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법을 익히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된다. 반면 영국의 아이는 유치원생임에도 불구하고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고 스스로 씻고 옷을 챙겨입고 머리를 빗고 밥을 먹고 소지품을 챙겨 유치원으로 가는 모습이 보여졌다.

스스로 자력을 기르는 노력과, 관계인들을 자력적인 존재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는 이처럼 길고 큰 인내가 필요하다. 자녀양육만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을, 남성이 여성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온전한 자력인으로 변화시키려면 기다림과 믿음이 요구된다. 고정된 역할을 넘어 능히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주려는 좋은 시도들은 늘 상대방이 변화하고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습성으로 인해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하는 모양이 답답해 보여도 대신해주거나 간섭하거나 윽박지르지 말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참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처음에는 비록 더딘 길처럼 보여도 가장 빠르고 가장 평탄하고 넓고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다.

우리 공부인은 자신에게 있는 고정관념을 속깊이 성찰하고, 모든 존재를 온전한 인격체로 믿으며, 각자에게 충만해 있는 자력을 끌어내주는 노력과 교육, 차별하지 않는 고른 분배와 동등한 역할 맡기기를 공부삼아 실천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제외되는 사람도 있다. 아~주 어리거나 아~주 노혼하거나 어떠한 병으로 인해 자력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자력있던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능히 타력을 빌어서 쓸 수도 있어야 한다. 그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응당 자력을 공부삼아서 양성하고 양성시켜 줘야 한다.

그 모든 자력 중에 가장 큰 자력이 있다. 바로 자성불을 깨달아 자타없는 온전한 내 힘을 회복하는 것이다. 내 안에 무진장 끌어쓸 수 있는 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본성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최고 최선의 자력이요 최고의 보은이며 불공이다. 그것은 현생은 물론 영생의 자력이 길러지고 영생의 자력을 길러 줄 수 있는 우주적 보은자가 되는 일이다.

이런 모든 면에서 나는 자력인인가 아닌가. 배은자인가 보은자인가 .

각자 충만해 있는 자력 확인
본성 깨닫는 것, 최선의 자력
영생의 자력 길러 우주적 보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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