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에도 풀숲에도 연못가에도
잠자리들이 날아다닙니다.
뾰족한 곳이면 내려앉아 햇빛에 몸을 맡깁니다.

1만개에 달하는 겹눈 한 쌍이
얼굴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

뒤에서 다가가는 아이의 기척을
먼저 알아차립니다.

어떤 생물은 아주 오래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수억 년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완벽하게 진화해서
더 이상 바뀔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일겁니다.
바로 잠자리가 그 경우입니다.

하루에 150마리 가량 모기를 잡아먹고 사는,
사람에게 유익한 곤충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잠자리의 유충이 살 수 없는
오염된 물을 흘려보내고
그 속에서도 모기의 유충은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사람 때문에 잠자리가 진화를 서둘러야될 것 같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잠자리와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은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잠자리에게 한 수 배우는 순간입니다.

왕잠자리의 영역은 사방 50m, 고추잠자리는 10m,
실잠자리는 1m의 영역권을 갖고 있습니다.

시인은 잠자리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곳까지가
잠자리의 우주라고,

잠자리가 바지랑대 끝에 앉아 조는 동안은
잠자리 한 마리가 우주라고 주장합니다.

잠자리와 우주를 들먹이는 시인의 품새에
또 한 번 배웁니다.

작은 우주에 갇혀있지 말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도전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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