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문화 시선 집중, 영상에 담아 본 인생

▲ 영화제의 포스터는 춘하추동을 상징한다.
▲ 서울노인영화제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동안 노인영상제의 일환으로 탑골영화제를 진행했다. 영상물 상영에만 그치지 않고 어르신들이 주체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참여할 수 있도록 2008년 전국 최초로 노인영화제를 개최했다.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는 노인세대들이 영화를 통한 창작활동의 삶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사회참여의 욕구가 발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5회째 열리는 서울노인영화제는 미디어를 매개로 노인 감독들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문화생산을 촉구하게 한다. 반면 젊은 감독에게는 다양한 시선과 고민의 기회를 제공해 그들의 문화와 시선이 한자리에 모여 관객과 소통하는 노인문화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서울노인영화제 영상공모는 60세 이상 어르신 감독에게는 자유주제를 부여했다. 일반인 감독에게는 노인에 대한 주제나 소재로 해야 한다는 미션이 부여됐다.
이번 공모에서 자유부문 68편, 노인 부문 73편이 접수됐다. 지난해에 비해 향상된 것이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임아람 사회복지사는 "복지관 내에서 미디어 영상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초보자반과 감독반을 나눠서 각 3개월씩 운영된다. 어르신들이 열의를 갖고 수업에 참여한다"며 "어르신들에게 배움의 결과물인 셈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어르신들이 처음으로 영상을 접하고 그 신선함에 매료돼 창작욕구가 커지는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편집도 직접 해 자부심이 커지는 것이다.

임 복지사는 "유관 기관에서도 노인영화제의 내막을 알고 놀라고 있다.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활동성과를 밝혔다.

실버세대와의 소통

제5회 서울노인영화제는 22~25일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영화와 청년 감독들이 노인을 주제로 만든 영화까지 한마디로 실버세대와 노인문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소통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이번 영화제의 특징이다.

노인영화제는 영화 '은교'를 개막 초청작으로 상영 한 후 본선 작 35편이 스크린에 올랐다.

이번 영화제의 홍보대사는 영화배우 박해일이다. 그는 "'은교'에서 노인 역할을 하며 서울노인영화제와 관련 영화들에도 큰 호기심이 생겼다. 영화가 젊은이들만의 소유물은 아니다. 어르신들까지 다양하게 영화를 즐기기 위한 무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꺼이 홍보대사를 맡았다"며 "제가 중개인이 되어 이 영화제의 소중한 가치를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다.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세대와 노인과의 소통을 주제로 한 영화 축제이다. 함께 영화 데이트를 즐기고 싶다"고 한 일간지를 통해 인터뷰했다.

영화제가 추천하는 필수 관람 4편이 있다. '엄마와 어머니의 나들이'는 평생 30명이 넘는 대가족 살림을 맡아온 친정 엄마와 과거에는 무서운 시어머니였지만 이제는 엄마와도 같은 시어머니. 그리고 딸이자 며느리라는 가족 관계에서 부과되는 서로의 직책을 벗어버리고 세 여자가 즐거운 나들이를 시작한 내용이다.

'소녀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정서운 할머니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일본군에 의해 집안이 몰락하게 되는 경위, 몸은 빼앗겨도 마음은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틴 인도네시아에서의 비인간적인 삶 등 영화는 일본군의 만행을 담담하게 고발했다.

'나들이'는 남편의 직장 때문에 나고 자란 고향 부산을 떠났던 주인공이 오랜만에 부산으로 나들이를 떠난다. 그리고 어릴적 친구를 만나 부산 곳곳을 돌아본다. 이 여행이 친구와 보내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 순간이 애틋하기만 하다.

'집념'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주제를 찾아다니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집념'의 감독 조용서(85) 어르신은 "처음 생각은 인사동에서 일본어 봉사활동을 담아내고 싶었다. 생각처럼 방향잡기가 쉬운게 아니었다. 센터 담당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줄거리가 엮어졌다"며 "체념하면서도 힘써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본선에 진출하게 되어 너무 영광이다"는 기쁨을 전했다.

조용서 어르신은 현재 일산에 거주하면서 안국동에서 외국어(일본어)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이번 영화제를 위해 고양영상미디어센터 미디어반에 5월에 등록한 후 꾸준하게 교육을 받아왔다.

그는 "우리 센터에서도 8명이 작품을 냈다. 하지만 2명만 본선 진출을 하게 됐다. 센터 담당 선생님들이 너무 감사하다"며 "나이 80이 지나 이렇듯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으니 참 좋다"는 소감을 밝혔다.

삶의 고민과 시선, 영화로 표출

단편 다큐멘터리 형식인 노인영화제 본선 진출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노인 문화를 엿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제는 가족, 인생, 죽음, 유산, 추억, 꿈 등 다양한 소재가 영화에 등장한다. 즉 현재 나이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고민, 문제의식이 작품에 담겨있다.

'꿈'을 출품한 이윤수(78) 어르신은 "이번 촬영을 위해 20여 곳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완성했다. 40℃ 폭염 속에서도 작품을 촬영했다"며 "평소 손자들 운동회를 촬영해 메일로 보내주면 자녀들이 기뻐하는 모습에서 동영상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작년에도 영화제 본선에 진출해 관객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영화에서 '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며 "꿈을 나열해 놓으니 그 또한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인생이었다. 촬영을 위해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대학교를 찾았다. 그런데 방학이라 학생을 만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이 학교의 끝에 위치해 있어 너무 힘들었다. 그것을 찍고 2~3일을 앓기도 했다"고 힘든 점을 소개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하니 가족들의 후원도 뒤 따르고 행사가 있으면 촬영 초청도 해 줘 보람이 크다. 특히 손자들이 '우리 할머니는 영화감독이다'고 자랑하기도 한다"며 "주위에서 '나이에 비해 젊어 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건강 유지하면서 꾸준히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을 밝혔다.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은 버릇처럼 하는 말씀 중 한 구절이 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말하자면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지. 암만 부족허고 말고~."

그렇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혹은 책으로 만들고픈 염원이 있기 마련이다. 삶의 굴곡이 많을수록 그 염원은 더 간절해져 표출되곤 한다. 노인영화제는 그 생각의 발현인 것이다. 노인영화제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실버세대의 꿈과 열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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