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성 교도·영산선학대학교( 논 설 위 원 )
추석 전날, 모처럼 부자(父子)가 함께 자리에 누웠다. 아들은 고1이고, 이름은 도천(道泉)이다. "도천아, 아빠가 너랑 겨울 눈 내릴 때 태백산에서 함께 텐트 속에서 잠을 잤던 것 기억하니? 너 초등학교 6학년 때였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 그날 밤 널 안고 꼬박 밤을 지새웠는데, 그때는 아빠가 한 팔로 안을 만큼 작았는데, 이제 이렇게 커버렸네." 나는 훌쩍 커버려 이제 한 팔로 안기에 버거운 아들을 끌어안았다. "전 아빠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많아요." 아들은 볼멘소리로 내게 안기지 않으려 했다. "그래? 그럼 상처를 아빠한테 꺼내보렴.", "아빠는 저랑 엄마를 늘 무시했잖아요. 전 아빠처럼 사람 무시하면서 살지 않을래요." 난 아들의 불만 앞에 담담하게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들이 받았다는 상처가 내게도 아프게 다가왔다. "아빠는 영산에 가기 전에는 너와 엄마에게 기대가 컸었나봐. 네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빠의 기대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야단치고 그랬는데, 영산에 가서 아빠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네, 조금 부드러워지신 것 같아요." 나는 아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도천아, 현대 언어학에 큰 영향을 준 학자로 노암 촘스키(N. Chomsky)가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야." 아들은 스마트 폰으로 노암 촘스키를 검색하더니 "놈 촘스키네요.", "'Noam'을 외래어표기법에서는 '놈'으로 표기하도록 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표기하는 거야.", "아빠가 대학원 다닐 무렵인 80년대에는 온통 촘스키였어. 그분이 MIT에서 강의했던 책을 그 다음 학기에 우리가 공부할 정도였으니까.", "무엇 때문에 그런 바람이 불었죠?", "그의 언어학을 변형문법이라고 하는데, 그분은 소쉬르(F. de Saussure)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인간의 심리를 언어학에 도입했던 거지.", "심리라면 마음과 같은 건가요?", "그래, 촘스키는 1957년 'syntactic structure'라는 논문에서 심층구조(深層構造, Deep Structure)와 표면구조(表面構造, surface structure)라는 개념을 제시한 거야.", "아빠, 조금 쉽게 설명해 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개념이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응,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나는 자장면이야'라는 문장을 비문법적인 문장으로 취급했는데, 촘스키의 변형문법에서는 문법적인 문장이 될 수 있는 거야.", "아빠, 어떻게 '나는 자장면이야'가 문법적인 문장이 되는 거죠?". "네가 중국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를 생각해봐. 앞 사람은 짬뽕을 시켰어, 넌 자장면을 시킬 경우 뭐라고 하니? '나는 자장면이야'라고 하잖아.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문장을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내가 자장면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틀렸다'라고 분석하였는데 촘스키는 심층구조에 '나는 자장면을 시키다'라는 문장을 설정하고, 그것에 '주문(注文)'이라는 '상황규칙(situational rule)'이 적용되어 표면구조에서 '나는 자장면이다'라는 문장으로 변형시켰다고 설명한 거야." 아들은 지적인 호기심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런 예는 자장면만이 아니야. '나는 우산이야'라는 문장도 문법적인 문장이 될 수 있지. 심층구조에 '나, 자장면, 초코파이, 우산, 시키다, 사다'라는 사전(lexicon)을 설정하고 표면구조를 생성할 때 '+구매(購買)'라는 상황규칙을 설정하면 가능한 거지, 그래서 그동안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기계적인 번역(machine translation)이 촘스키의 변형이론에서는 가능해진 거야.", "아 그러네요. 재미있어요.", "그런데 아빠는 심층구조는 언어에만 있지 않고, 우리 교단과 국가와 민족에게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층구조가 있고, 사람들의 삶에도 심층구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지금의 표면구조는 인과의 진리에 의해 뒷받침되는 심층구조가 있는 거야. 인과의 진리에 따라 현재의 표면구조는 당연히 미래의 심층구조가 되는 거고, 언어학자들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의 심층구조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어떤 현상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을 때는 그 현상의 심층구조를 파악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미래는 인과의 진리를 믿고 실행하는 사람들의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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