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을 햇빛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일렬로 서있는 수수 사이를 서걱거리며 지나갑니다. 이슬과 햇빛과 바람으로 빚은 자양분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했던 수수잎은 갈기갈기 찢겨 바람에 너울거립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 많이 포근해진 볕이 들판을 무르익게 하고 산들거리는 바람이 수수 알을 살지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볕과 바람을 맞이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닐까요. 재산을 많이 쌓아두고 부유하게 살아가기 위해, 권력을 쟁취하고 명예를 자랑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종일 힘겨운 일을 해도 싫지 않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잠깐만 걸어도 짜증 나는 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무엇이라도 이루어낼 것 같고, 하고싶고 해야할 일이 하늘을 찌르던 젊은 날의 패기는 슬그머니 내려놓으면서, 관조하는 듯한 시선과 마음으로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범한 행복과 아름다움을 누리는 삶이 진정 평화로움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가을입니다.

가을볕과 갈바람을 맞이하면서 관조를 넘어선 넉넉한 마음으로 익어 가는 가을을 더욱 알차게 갈무리하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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