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병을 치료합시다

▲ 오선명 교무 / 경남교구 문산교당
일원상 진리의 성품이 정신수양의 벼릿줄입니다

정신수양이라 함은 일원상 진리를 닮은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여 지키고 닦아서 양성하는 공부입니다. 일원상 진리는 곧 원만구족(圓滿具足)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어느 한 곳 모나지 않고 부족함이 없으며, 다북차고 두루하여 일호의 사가 없이 공변됩니다. 더욱 우리의 영성인 본래 마음으로 비춰볼 때 지극히 고요하고 참되며 떳떳하여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마치 새벽 별처럼 그윽히 빛나고 소슬바람처럼 막힘이 없습니다.

이 영롱하고 빛나는 영성의 뿌리가 우리의 정신이요, 마음의 고향이며 안식처이요, 중생이 껍질을 벗고 부처가 되는 자리입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이를 분별심과 주착성이 없는 우리의 본래 성품이라 하셨습니다.

경계가 몰아칠 때나 경계가 없을 때에도 한결같이 지키고 닦아서 일원상 진리와 같이 마음을 쓰고, 천만 경계 가운데 대중을 잡아 활불로서 제생의세의 선도자가 되자는 것이 수양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일원상 진리가 갊아있는 우리의 본래 성품은 정신 수양의 벼릿줄이요, 준거의 틀이며, 요령입니다.

정신수양으로 치료해야 할 세상의 병들

세상이 험악하고 사회가 온통 진흙탕입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종교 전반이 타락하여 혼란함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특히 강대국들의 자국 이익과 패권 다툼으로 인명 살상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반인륜적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의 병이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로 보이지만 내심 가까이에서 찾아보면 곧 너와 나의 문제요, 내 마음속에 종양처럼 커 나가고 있는 마음의 난리이며, 마음의 병입니다. 종교, 신분, 성, 연령, 학식, 수양 공부의 연조 등과도 크게 관계없이 무작위로 적용되는 이 마음병 난리가 우리의 안식처를 파괴하고 이 사회를 좀먹으며 세상을 병들게 하였습니다.

부모, 형제, 친지, 이웃, 또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원망심이 치솟고, 한맺힌 응어리를 풀고 보상을 얻으려는 듯 화풀이를 할 때가 있습니다. 굴절되고 왜곡된 사고로써 세상을 저울질 하며 높은 담을 쌓아갑니다. 내 주머니에 돈만을 생각하며 인색하고 탐욕스러우며 이익이 되는 일에 불나방처럼 덤벼듭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마음난리는 분명 영원한 장래에 죄고의 종자입니다. 깊게 뿌리 내리고 포진한 종양을 도려내는 치료를 해야만 살 수 있듯 마음의 병도 또한 마찬가지로 결단코 치료해야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아니면 마치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지는데 연고와 반창고로써 치료 하는것과 같습니다.

마음 난리의 이 온갖 적군들은 찰나의 순간도 용이한 생각으로 대처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정신수양 공부를 할 때 냉정한 정신으로 살피고 또 살펴서 공부하라는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점검해야 합니다.

새 세상의 주인되는 정신수양 공부

소태산대종사께서 〈대종경〉 전망품에서 밝히시기를 정신적 방면으로는 장차 세계 여러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지도국이 될 것이라고 하셨고 점진적으로 어변성룡(魚變成龍)이 되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세계의 으뜸가는 정신적 지도국, 개울의 작은 피라미같은 나라가 구천 허공을 주름잡는 황룡이 된다는 예견적 법설에 주목해야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 현 시국에서 자신할 수 있는 내용일까요? 그렇습니다. 만고에 전무후무한 일원대도가 이 땅에 우뚝 섰고, 일원회상이 건립되어 전개되기에 분명 이 땅은 세계에 으뜸가는 정신적 지도국이 될 것이요, 일원회상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마치 어변성룡의 도약적 대발전을 가져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냉정한 정신, 확고부동한 결단의 신성을 바탕해서 정신수양(삼학을 겸한)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요원한 미래요, 여의보주를 얻지 못한 용이 심곡에서 이무기가 되어 억겁의 통한을 삼키는 비통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차리고 공부합시다.

사실 정신수양 공부를 오래 오래 쉬지 않고 하면 세상 만물의 주인이요, 모든 선연 공덕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본래 성품을 회복하여 일등 마음 조종사로서, 원융무애한 불법의 활용자로서, 이 사회에 우뚝 서는 결함없는 인격자로서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와 이 세상의 병든 사람들까지도 치료해 줄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교리 곳곳에 나타나는 마음난리 평정, 묵은 마음 일구고 가꾸기, 도둑 맞은 마음 되찾고 지키기, 탐진치에 찌들은 마음 놓고, 가라 앉히고, 씻는 온갖 공부가 정신 수양 공부를 강조한 내용입니다.

또한 선과 염불, 기도를 아침과 저녁 내지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정진하여 흩어지고 미약한 정신을 추스려 잡고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에 지나치게 끌리고 파묻혀 참된 정신을 잃지 않도록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는 공부도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천만경계 가운데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정신을 빼앗고 시끄럽게 하는 일을 짓지 않고 정당한 일과 공덕이 되는 사업에 매진하는 것도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사물을 접응할 때에 경외심을 놓지 않고 불공하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애착, 탐착은 물론 여유롭고 한가하며 담담한 맛을 길들여 가는 것도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일경(一境)일처(一處)에 일심을 얻는 재미로 삶의 안식을 삼고 뜬구름 같은 번뇌와 부질없는 헛꿈에 방일하지 않는 심경을 길들여 결국 일원상 진리와 같이 구경에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부귀와 영화, 세상의 고락, 특정 직업이나 직장의 대우, 빈천의 환경, 원불교 교단의 예우 내지는 법위등급과 사업성적의 평가 등에 무애의 대자유를 얻을 뿐만 아니라 무상(無常)은 신속하고 생사는 큰 일인데 공부인의 구경 목적인 대해탈 도인이 될 것입니다.

동정간 쉼없는 정신수양 공부

정신수양 공부는 일 있을때나 일 없을 때나 한결같이 정진 적공하는 공부입니다. 특히 천만 경계 가운데 정신수양 공부를 놓지 않아야 참다운 큰 힘을 얻고 공부의 실력이 나타납니다. 하루 몇 시간, 몇 번의 정해진 정신수양 공부도 반드시 필요하고 정신수양 공부의 요령과 대중을 놓지 않고 경계 속에서 일심을 양성하고 대해탈의 법력을 얻는 법기의 공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정신수양 공부는 그 밑받침이 되고 보완이 되어야 하는 사리연구 공부, 작업취사 공부를 병행해야만 실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언제나 쉼없이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공부를 정진 적공하여 불보살의 인품과 능력을 갖춥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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