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내 모습, 케어사업 통해 자신 정리 계기

▲ 은빛마음학교에서 어르신들이 유언장을 썼다.
▲ 한양금(오른쪽 첫번째) 어르신이 노-노케어 사업단의 은혜를 받고 있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오른쪽부터 부방강·양순원·장장환 어르신.
70대의 건강한 어르신이 또래의 건강하지 않은 어르신을 보살피고 돌보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보수를 떠난 노년의 봉사활동은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19일 신제주교당 부설 사)섬나기 제주시니어클럽의 여러 사업 중 노-노(老老)케어 사업단 활동을 함께했다.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노-노케어 사업단은 장애인 가정이나 보호를 요청하는 노인 가정을 1주일에 3회 방문해 정서적 지지와 생활안정을 돕는다. 소규모 활동이지만 방문을 받는 어르신들은 노-노케어 봉사자들을 늘 기다리는 것이 일과가 됐다.

신제주교당 황법심 교무(제주시니어클럽 대표)는 "노-노케어 사업은 청소년지킴이 사업과 동시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건강한 노인이 건강하지 못한 노인을 돌보는 사업이다"며 "케어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1대1로 봉사자를 가정에 파견하다보니 여느 사업보다도 어르신들에게 위안을 주는 사업이 됐다"고 소개했다.

노-노케어 사업단에서 활동 중인 어르신들은 공통적인 깨우침이 있다.
"나도 곧 저 모습이 된다."

이러한 깨침을 얻고 보니 친 형제자매, 동생, 부모처럼 보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봉사를 받는 사람 역시도 진정성이 느껴져 의지하고 봉사자를 늘 기다리게 된다.
▲ 올해 6년째 노-노케어 사업단에서 일하는 이옥녀·김부자·오복덕 어르신.(왼쪽부터)
내 가족 보살피는 정성

6년째 활동 중인 오복덕(78) 어르신. 그는 이 사업에 참여하기 전 우울증 시초를 보였다. 그는 "참 괴로웠다. 남편이 청소년지킴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집에서 힘들어 하지 말고 시니어클럽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 줬다"며 "그렇게 시작된 발걸음이 지금껏 노-노케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 어르신은 2006년 3월 교육을 받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차츰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도 사라지고 감사심이 생겨났다.

그는 "제가 처음 담당한 사람은 참 불쌍했다. 남편도 자식도 없었다. 혈압과 병을 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10년 후 내 모습이려니' 생각했다"며 "친언니 보살피듯 식사했느냐고 묻고 약을 잘 챙겨서 먹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할머니가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할 때가 있는데 와서 돌봐주니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5년 보살핌을 받은 후 돌아가셨다. 그 모습에 '여생 남을 위해 봉사하자. 나와 만나는 사람 친언니이고 동생이고 가족이다' 생각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봉사를 하며 안으로 자신을 더 다지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는 "내 생의 가장 큰 보람을 요즘 느낀다"며 "노-노케어를 통해 나의 죽음 모습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노-노케어 사업단 봉사자들은 "11자(다리) 자가용이 말을 안듣는 날까지 봉사에 임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노-노케어사업단을 담당하는 홍은희 복지사는 "어르신들이 활동을 하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며 "100가정에 100명의 봉사자를 파견해 식사보조와 청소, 말벗 활동을 한다"고 소개했다.

어르신들 이야기꽃 주제 '유언장'

김부자(76)·이옥녀(76)·부방강(71)·양순월(81) 어르신과 함께 한양금(80) 어르신 댁을 방문했다.

한양금 어르신은 "월·목·토 세 번 방문해 도와준다.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기다려진다. 2~3시간 짧은 보살핌이지만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 형제간 보다 더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 이웃집에 사는 장장환(68) 어르신이 왔다. 양말을 안 신은 모습에 어르신들은 "청춘인가 보네. 겨울인데 옷을 따시게 입고 댕겨야지"하며 인사를 나눴다.

천식을 앓고 있는 한 어르신은 "숨이 가빠 심장약을 복용하고 있다"며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 허덕이게 된다"고 말하자 곁에 있던 어르신들은 "5일 장에 가서 꾸지뽕을 사다가 약으로 해 먹으면 좋다"고 이구동성 추천했다. 꾸지뽕 잎 보다는 열매가 더 약효가 있다며 천식과 가래에 좋다는 정보를 일시에 쏟아 놓았다. 어르신들과 만나면 정보교환과 더불어 건강 상식을 나누느라 이야기꽃이 핀다.

어르신들의 이야기 주제는 최근 이웃집에 살다 돌아가신 분 이야기로 연결됐다. 그 어르신은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마치고 노래방에 갔다. 평소 그 할머니 답지 않게 그날은 노래에 욕심을 내더라. 그러더니 아침에 머리 아프다고 병원에 갔는데 그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어르신들은 "참 복 받은 사람이네. 인생은 긴 것 같아도 가만히 따져보면 참 짧은 것이다"며 "좋아하던 노래를 실컷 부르고 갔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다시 '유언장'으로 이야기가 연결됐다. 김부자 어르신은 "나는 아파서 병원 갈 때 산소호흡기 끼지 말 것과 연명치료 하지 말 것, 수술도 하지 말 것을 유언장에 써 놓겠다"며 "노-노케어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 죽은 모습을 여러 봤는데 감사심으로 사는 사람은 그렇게 편안한 얼굴을 하고 가더라. 반면 욕심 많고 회향을 못하는 사람은 얼굴이 까맣게 변하고 눈도 뜨고 입도 벌리고 가더라. 너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7080어르신들.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르신들의 대화 주제는 늘 '마지막 가는 모습'이 주류가 되기도 한다.
▲ 어르신들이 나의 사진첩 만들기를 하고 있다.
은빛마음학교 자존감 향상

제주시니어클럽에서는 단순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은빛마음학교'를 4년 째 운영 중이다. 이 학교에서는 의식개혁과 고령화 사회의 노인문제에 대처하는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자기개발과 자존감을 높이고 어르신들의 활기찬 노후를 위해 운영하는 것이다.

그중 웰다잉(well dying) 죽음준비교육도 7회기에 거쳐 진행된다.
유언장 만들기와 살아온 날 사진첩으로 만들기, 권도갑 교무 초청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웰다잉 교육을 마친 오복덕 어르신은 "죽음이란 단어를 듣기조차 싫어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가야할 길이다. 교육을 받고 난 후 마음의 변화가 왔다"며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게 됐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해 나가겠다"는 감상을 밝혔다.

황 교무는 "교화활동만으로는 제주 지역사회에 이렇듯 원불교를 널리 알리기는 어렵다. 시니어클럽을 통해 법당에서 마음학교 운영 등 간접교화를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며 "제주 시내 1천여 명의 어르신이 시니어클럽에 등록되어 있다. 새사업이 늘어남에 따라 보수교육과 일자리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교무는 그 어떤 일이건 맡아진 일을 일심으로 하면 바로 천지행을 하는 것이라 본다. 지자체마다 시니어클럽 하나씩을 꼭 운영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모든 교육이 법당에서 진행되는 만큼 은연 중 간접 교화가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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