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일깨우는 침묵의 힘
마음을 여행하는 시작은 여행지를 선택하면서부터 결정된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주최하는 '봉쇄수도원 24시간 영성체험'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한 해를 결산하고 참회반성하는 12월을 앞두고 있었기에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창원에 있는 시토회 수정의 성모트라피스트 수녀원에 도착했을 때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건물내부에는 '봉쇄구역'이라는 안내판도 선명하게 들어왔다. 연구소 일행들을 기다리면서 봉쇄수도원 주변을 산책했다. 오랜만에 만난 침묵은 자연으로 더 깊게 다가섰다. 바람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고 낙엽이 굴러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끔 고요한 정적을 깨우는 까마귀 소리와 풍경소리가 여행자를 먼저 반기는 듯 했다.
기도와 노동으로 채워져
산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만나는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 취재의 목적이 '영성체험'이기에 내 자신을 반추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초발심의 '나 지금 여기 무엇하러 왔는가'라는 출가수첩을 열어보는 기연을 만들었다. 봉쇄수도원에 온 나의 목적도 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오후 햇살을 받으며 사색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들이 도착했다. 봉쇄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니 장 요세파 수녀가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수도원 봉쇄구역 안에서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라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친다"면서 "고독과 침묵 속에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동하는 수도자들의 영토다. 수도자들은 봉쇄구역 안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관상생활을 영위한다. 기도, 노동, 독서, 채식 등 엄격한 수행생활이 뒤따른다"고 설명했다.
봉쇄수도원의 일과는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서, 오전 8시30분 노동이 시작될때까지 독서의 기도, 묵상, 삼종기도, 아침기도, 미사가 이어진다. 밭일, 재봉, 주방, 칠보, 묵주·카드 만들기, 잼제조 등 노동은 오전과 오후 6시까지 이뤄진다. 노동이 끝나면 또다시 기도, 묵상, 성독을 하며 저녁 8시에 취침한다. 이 모든 것이 침묵 속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절제된 일과 때문에 트라피스트는 카톨릭교회에서 가장 엄격한 고행생활을 하는 관상수도회로 알려져 있다. 관상이란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직관, 즉 모든 순수한 형이상학적 사색과 성숙하고 지혜로운 종교체험의 바탕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예수에 빠진 사람'이라고 표현한 장 요세파 수녀는 "오직 예수와 복음을 위해 자신을 온통 바친다. 기도, 노동, 성독으로 이뤄지는 지극히 단순한 삶 속에서 침묵과 고독 속에서 기도하고 일한다"며 "온세상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비우신 성체와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강한 신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24시간 영성체험
봉쇄수도원인 트라피스트 수녀원이 유일하게 24시간 개방된 공간은 성당이다. 언제든지 누구나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신앙의 문을 열어놨다. 성당을 들어서자 기도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수녀들의 일과 자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동하는 시간 외에는 이곳 성당에서 기도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그래서일까. 성당에 들어서니 휴식을 넘어 편안함이 마음을 감쌌다. 기도의 에너지가 충만해 은총의 공간으로 자리했다.
프로그램 일정 중에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 역시 성당으로 올라가 기도를 올렸다. 법신불사은님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문득 한 줄기 거센 바람처럼 삶에 대한 물음이 마음을 흔들었다. 깊게 들추어보지 않았던 출가의 삶도 한몫 했다. 출가 하기 전, 사랑하는 가족들의 열반을 지켜보면서 죽음 앞에서는 돈도 명예도 가족도 모두 허망하게 떠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때 접한 〈대종경〉의 천도품 말씀인 '영원한 나의 소유는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라는 법문이 나를 대종사님 품으로 인도했다.
〈교전〉속에서 만난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내 삶의 모델이었다. 그런데 침묵의 기도 속에서 참회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내면을 흔들었다. 갑자기 백척간두에 선 기분이었다. 깊은 고뇌가 엄습해 왔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홀로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나목과도 같은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침묵을 통한 체험
다음날 아침기도와 미사 시간에 법신불사은님의 응답이 들렸다.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따라 제대로 공부하던지, 그 정신을 고치지 못한다면 사가로 돌아가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나의 모든 분별의식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따르라는 실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백척이나 되는 긴 장대에서 뛰어내리니 부처님이 연꽃이 되어 받아주었다는 일화의 의미를 맛보게 해주었다.
아침미사를 마치고 고해성사처럼 수녀들과 신앙체험을 나눌 수 있었다. 장 요세파 수녀는 "영성의 공동체인 이곳은 단순한 생활 속 공동체이기에 인간의 가장 밑바닥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휘몰아치는 침묵의 밑바닥 속에서 하느님과의 영적인 만남을 가질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인간은 내면의 모래사막으로 들어가야 그 사막 속에서 산들바람으로 오시는 그 분을 영접할 수 있다. 고독의 사막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살아있는 기도할 때 자신의 존재인 하나님과 만나게 된다"고 체험을 내비쳤다. 그래서 관상수도원의 가장 근본은 본원으로, 원천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천주교는 이론 이전의 체험을 중요시 한다. 체험을 빼면 종교의 알맹이가 없다"는 가르침이 사막에 홀로 핀 꽃처럼 아름답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