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의 주역들이 일군 반백년 역사

▲ 프로젝트를 활용해 설교를 하고 있는 김진성 교무.
술산교당으로 향하는 길, 겨울 햇살이 환했다. 며칠 계속되던 동장군의 기세가 따스한 햇살 받아 물러난 오후, 움츠려 있던 땅과 나무들도 한 줌 햇살에 온기를 되찾았다. 마을 골목에 접어들자 교당 일원상이 이정표가 됐다.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술산교당 안뜰에도 겨울 햇살이 가득했다.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듯, 입구에서부터 교도 몇 분이 반갑게 손을 잡아 이끌었다. 고향집에 온 것 같은 온정에 몸과 마음 또한 훈훈해 졌다. 생활관에 모여 있는 교도들의 인사와 덕담으로 한참동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50여 년, 교당과 함께해온 교도들은 누구라도 친구이자 가족으로 금새 하나가 됐다.

쌀계 조직, 법당 개축 봉불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 자리한 술산교당은 원기48(1963)년에 설립된 교당이다. 당시 교당 이름은 임산교당(臨山敎堂)으로, 이후 임피면 소재지에 임피교당이 설립되면서 지명 그대로 술산교당으로 변경됐다.

원기92년에 법당 개축 봉불식을 올린 술산교당은 여느 봉불식과 의미가 달랐다. 원기51년 봉불식 이후 40여년만에 이뤄지는 법당 개축 불사인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선, 그 당시 교당의 현안 과제는 생활관 신축이었다. 법당도 세월이 흘러 노후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교무들의 안식처인 생활관이 급선무였다고 교도들은 전했다.

그래서 교도들은 자금 조달의 방법으로 쌀계 조직을 결성했다. 당시 교도회장이었던 고정명(77) 교도가 주축이 됐다.

"사가(私家)를 지을 계획이 있었어요. 그런데 공가(公家)인 교당 생활관을 먼저 짓는 것이 도리라 생각돼 쌀계 100가마니 짜리를 인근 아는 사람들과 상의해 결성하게 됐지요"

올해 3월, 신앙 수행담을 회고록으로 담아낸 바 있는 고정명 교도가 당시를 회상했다.

고 교도는 쌀계의 순번을 교당이 앞서 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게 생활관을 먼저 짓고 나서야 자신의 집은 빚을 얻어 짓고, 이후 계를 타서 갚아나갔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교당 생활관을 먼저 지었다는 보람이 컸다는 고정명 교도의 말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생활관을 완공하고 다시 법도량인 법당을 짓겠다는 희망으로, 교도들은 8년 쌀계를 다시 시작했다. 165㎡의 법당 리모델링 및 주변 정리기간 동안 모든 교도들이 한마음으로 울력에 참여했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인부들의 식사 담당은 물론 법당 흙메우기, 주변 자갈깔기, 나무 옮겨심기 등의 봉사활동에 교도들이 각자 몫을 담당했다. 법당 바닥 공사비는 청년 교도가, 대문은 초창 교도가, 공사에 필요한 장비 제공은 당시 장은식 교도회장이 맡는 등 재가 출가교도들이 모두 나선 것이다.

원기92년, 드디어 대지 2310㎡에 법당 165㎡, 생활관 118.8㎡의 법당 개축 불사가 마무리 됐다. 술산교당 50여년 성상은 그렇게 교도들의 손으로 일궈낸 값진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 교도들이 스크린을 통해 종법사 법문을 시청하고 있다.
프로젝트 통한 디지털 교화

술산교당은 교도들의 평균 나이가 70대인 전형적인 농촌교당이다. 그런 술산교당이 매주 프로젝트를 통해 교단의 뉴스를 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육일대재를 비롯, 생중계되는 종법사 법문을 교당 법당에서 직접 듣고 있다. 디지털 교화의 선진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원기95년에 부임한 김진성 교무의 특성화 전략이다.

"농촌교당이다 보니 교도들의 평균 연령대가 70대여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종법사님을 뵙는 일도 쉽지 않지요. 또 총부에 걸음을 하지 못하니 교단의 대소사를 알 수가 없습니다. 프로젝트를 설치하면 활용도가 크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도님들이 다양한 교단 소식과 종법사님 법문들을 접할 수 있으니 사이버교화의 장점을 활용한 것이지요."

김 교무는 그렇게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사이버교화의 접목을 시도했다. 법회 시작 전, 인터넷으로 한 주간의 교단 뉴스도 들어보고, 영상을 활용한 추모 설교를 진행하고 있다. 또 교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4축2재의 종법사 법문도 놓치지 않는다. 사이버교화의 접목은 교도들의 호응이 생각 이상으로 좋아 법회 진행에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다. 농촌교당의 교화 환경을 역활용한 그의 교화전략이 돋보였다.

술산교당 한쪽에는 화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 또한 농촌교당의 환경 속에서 문화교화를 꿈꾸는 김 교무와 교도들의 새로운 희망터가 될 것이다.
▲ 술산교당 교도들은 성지순례를 통해 신심을 북돋우며 교도간 친목의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신심으로 하나 되는 교도

술산교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주춧돌은 교도들의 신앙심과 수행심이었다. 14년간 교도회장을 역임한 고정명 교도는 새벽4시30분이면 어김없이 법당의 불을 밝히고 108배로 시작하는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하얀 눈이 쏟아져 발목까지 빠지는 겨울에도 변함이 없다. 함께 자리한 교도들은 고 교도의 적공의 정성이 본인들의 신앙·수행에도 원동력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채삼학(82)교도는 지금까지 전서를 20번 넘게 사경했다. 지금도 법회 시작 30분전에 교당에 도착해 김 교무에게 사경 노트를 검사받는다.

"컴퓨터를 모르니까 인터넷사경은 못하고 펜으로 한 자 한 자 사경을 하고 있어요. 매주 교무님께 검사 맡으려면 한 장이라도 써야지 하고 맘먹고 있지. 노트 검사 받고, 영상으로 뉴스 보고, 그러고 법회 시작하는 재미가 너무 좋아." 채 교도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확인도장을 찍어주는 교무님 때문에라도 숙제를 꼭 해야 한다"며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교도들의 평균 나이가 많다 보니 정도선(69) 교도는 젊은 교도에 속한다. 정 교도는 70대 미만 젊은 교도들의 모임인 연화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젊은 우리들도 교당에 뭔가 도움이 되자 싶어 다달이 모임을 갖기로 했지요. 11명이 회원인데 성지순례도 다녀오고, 교구 행사가 있으면 공양도 하지요" 정 교도는 가족교화에도 열성이다. '내 식구가 교당에 안 가는데, 남의 식구 오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부터 교도회장을 맡고 있는 최혜덕 (57·원광대 교수)교도는 교도 교화를 늘 연마하고 있다. "갈수록 농촌에 사람이 줄어들고, 후속세대가 없으니 지금만큼 교도수를 확보할 수 있을까 늘 고민입니다. 50~60대의 비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내 자신부터 신뢰성 있는 행동을 보여야지요." 교도 교화가 앞으로의 과제임을 말하는 최 교도회장의 마음에는 교화 비중이 묵직하게 자리해 있다.

바쁜 농번기에도 2310㎡의 교당 뜰을 손으로 일일이 제초 작업하기 위해 5~6번 모이는 교도들, 매주 마지막 법회는 100년성업봉찬 기도를 올리고 기도 성금을 모으고 있는 교도들, 한 주간의 교단 뉴스를 프로젝트를 통해 접하고 법문을 받드는 교도들, 술산교당 반백년 역사에는 교당의 산 증인이자 교단의 주역들이 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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