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원불교를 떠난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칼럼이다. 나는 원불교를 당분간 떠나보려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담담한 마음으로 써본다.

내가 원불교를 떠나는 이유는 원불교 안에 사은님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은님 안에 원불교가 있지만 원불교가 사은님을 안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견성을 경험하고, 그리고도 좌절과 어둠에 물들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도 왜 그리 시련을 많이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어두운 기운을 완전히 물리쳤고 앞으로 다시는 부정적인 기운에 물들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요즘 들어 내 삶과 주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며 살아보았다. 매일 걷던 길도 내 길, 매일 가는 공원도 내 공원, 매일 길에서 옷깃을 스치는 사람도 내 사람들. 이렇게 하나하나 내 것을 삼다보니 우주 전체가 내 것이란 믿음이 생겼고 이제는 내 마음과 생각 안에서 어느 사람 하나, 어느 물건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원불교를 사랑하지만 교회도 사랑스러워지고 절도 사랑스러워졌다. 그래서 내 마음 안에서는 원불교와 교회의 가치가 똑같아졌고, 이제는 원불교를 떠나보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교회를 가보고 이슬람 사원을 가보고 싶어졌다. 그들의 생각과 믿음이 궁금해졌고 그들을 더 존경하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이것이 내가 지금 원불교를 떠나는 이유이다.

그런데 원불교 안에 사은님이 없다고 느꼈다. 한 울안, 한 이치를 외치면서 남의 교당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하는 어떤 교무님의 말에 상처받은 적도 있고, 삶이 버거워 상사님을 뵈러 가려고 연락을 했는데 '외부인'이 오면 불편해 하신다고 거절당한 적도 있다. 원불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또 다른 수많은 울타리가 나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누구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불교에 느낀 실망을 다른 교도들도 느꼈을까봐 염려가 돼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믿고 싶어도 의심을 해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에도 눈을 돌린다. 이 칼럼이 나가면 부정하는 의견이 많을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밉거나 내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아마도 대부분은 원불교의 안 좋은 지적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 또한 원불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원불교를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선 원불교를 내 틀이 아닌 바깥의 틀에서 봐야 한다.

난 항상 원불교의 미래가 밝다고 주장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쇄신한 원불교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 보고, 그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라면 어떤 능력 있는 청년이 또 이탈을 할지 모른다. 나는 원불교에 대해 은혜만 기억하고 나가지만 원망을 하고 나갈 교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끝으로 이 칼럼을 계기로 원불교의 밝은 미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원불교가 사은님을 포함 할 때, 우리가 언제든 교당에만 가면 사은님을 만날 수 있을 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청년들이 손에 손잡고 자연스럽게 원불교로 모여 들지 않을까.

이번호로 〈배우 한상돈의 대중문화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신년호 부터는 〈허경진 교도의 문화코드〉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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