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원 평균 70세, 음악과 법연으로 내면 치유

▲ 가을사랑 음악회에서 하얀음계 합창단이 제3부 발표를 마치고 관객을 향해 손을 들어 화답했다.
'할머니! 할머니~이' 연주를 마치자 여기저기서 할머니를 찾는 어린 목소리가 돋보인다. '우리 어머니 저렇게 멋있어도 되는 것일까?' '우리 할머니 정말 멋져!' 이 역시도 하얀음계 합창단의 가을사랑 음악회를 본 가족들의 한결같은 감상이자 마음이다.

13일 서울회관 1층에서 하얀음계 정의설 단장, 박우경 총무, 엄장원 지휘자를 만났다. 10월21일 오후3시 서울여성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던 하얀음계 가을사랑 음악회의 준비과정을 듣고자 해서였다.

CD를 통해 공연 전체를 관람한 첫 감상은 '내 몸에 왜 닭살이 돋지'였다. 70~80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고음을 내기위한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을 부를 때는 마치 15세 소녀가 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하듯 단원들은 세련된 율동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는 정 단장이 하모니카로 먼저 연주를 한 후 2절에서는 재즈 풍으로 활기차게 무대를 리드했다.

연주회의 마지막 곡은 동요와 민요 메들리. 관중석에서 흥겨움에 박수로 박자를 맞추자 엄 지휘자는 제재를 했다. 그만큼 합창단원들의 멜로디와 소리에 집중하며 마음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라는 뜻이었다.

민요 '아리랑'과 '옹헤야'를 부를 때도 어깨춤은 빠지지 않았다. 리듬과 리듬 사이 순간순간의 율동은 연주회에 경쾌감을 더해줬다. 정진여 반주자도 어깨춤을 추며 피아노 반주를 이어갔다.

앵콜 곡 '만남'은 수화를 곁들여 관객과 하나가 됐다. 하얀음계 가을사랑 음악회에는 교무중찬단도 출연해 동요메들리와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또 소프라노 배제훈 교도의 독창곡(반주 박지영) '넬라판타지아', '촛불'로 노장 음악가의 힘을 발휘했다.

스펙 쟁쟁한 단원 40명

서울교구 하얀음계 합창단은 원기95년 4월에 결성 창단됐다. 합창단원 평균 나이는 70세. 하얀음계 합창단원의 가입 자격은 60세 이상 여자 교도여야 한다.

정 단장은 "20여 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교구원음합창단 단장들의 모임인 화음애를 중심으로 노래를 사랑하는 도반들과 하얀음계를 창단했다"고 소개했다.

'화음을 사랑하는 모임'인 화음애는 월1회 꾸준히 모임을 해 왔다. 단원 40여 명이 인생 후반기를 보내며 하얀머리를 갖고 노래하는 사람들이라 '하얀음계'라 단명을 지은 것이다.

창단(단장 차원경, 총무 박우경) 후 단원들은 "매주 월요일 연습만 기다렸다. 지휘자는 귀찮았을지 모르나 우리 앞에만 오면 재미있게 노래를 가르쳐 줬다. 늙은이들이 웃을 일이 뭐 얼마나 있겠는가. 노래 연습할 때만큼은 근심 걱정 다 놓고 호탕하게 깔깔거리고 웃는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최근 내년 2월까지 합창단 연습을 방학했다. 내년 3월 3주 월요일이나 되어야 만난다는 정 단장의 전화 연락에 단원들은 "웬 방학을 그리도 길게 하느냐"는 원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안된다"는 엄 지휘자의 의견에 꼼작 없이 방학에 들어간 것이다.

김 총무는 "10년 이상 원음합창단에서 갈고 닦은 목소리들이라 조금만 연습해도 소리가 회복된다"며 "하얀음계 단원들은 공부 실력도 출중하다. 각 교당의 법사·법호인, 회장단 역임자, 법훈인, 봉공회 활동자 등으로 구성돼 있으니 무대에만 서도 박수가 절로 나온다"는 단원 자랑을 했다. 한마디로 교단 내 스펙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단장은 "이제는 자매들 같다. 신앙으로 한 가족이 된 것이다"며 "차 단장님이 남편을 여의고 '못잊어'를 부를 때면 한없이 눈물을 흐른다. 그러면 단원들도 함께 따라 울면서 내면을 치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하얀음계합창단 소속 단원들이 하이원빌리지 송년의 밤에 초대되어 어르신들에게 신나는 노래를 선사했다.
노래와 함께 한 신앙생활

박 총무는 "일정 기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참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노래를 쉬지 않았다. 노래를 하면서 내면을 정리하고 치유했기 때문이다"며 "특히 나의 힘들고 어려운 심경을 담아 '사은님 사은님' 성가를 부를 때면 한없이 눈물이 나온다. 그렇게 노래를 하고 나면 뭔가 시원하게 해결된 듯 한 기분에 기운이 새로 솟는다"고 경험담을 말했다.

엄 지휘자 역시 "하얀음계 단원들의 노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이다. 지휘자인 내가 더 감동한다"며 "소리도 좋지만 법공부가 되어져 왠지 다르다. 신앙으로 내는 소리이다"고 칭찬했다. 특히 이번 연주회 입장할 때 '기도'를 부르면서 양쪽에서 입장을 했다. 분위기가 숙연해 지고 차분해 져 참 멋졌다는 후문이다.

단원들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전곡을 다 외워서 무대에 섰다. 정 단장은 "이 연령에 노래 가사를 다 외운다는 것, 또 순서하나 안 틀리고 하는 것은 보통의 정신력이 아니다"며 "일심으로 하니 치매예방에도 좋다. 치매 초기인 단원이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 가사 하나도 안 틀리고 연주회를 무사히 마쳤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노후생활 취미활동으로는 음악활동이 가장 좋은 것 같다"며 "원음합창단을 그만 둔 후 지역 내 문화센터에서 활동을 해보려했지만 정서가 너무 달라 적응이 안된다"는 체험도 밝혔다. 그만큼 신앙으로 하나 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코드에 맞는 것이다.

정 단장은 단원들 한 명 한 명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특히 연주회를 꼭 보고 싶었으나 그만 열반한 단원의 남편이 있어 아쉬움을 더했다.

그는 "그 단원의 남편은 연주회 때 휠체어를 타고 와서라도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우리들의 공연을 못 보고 가셨다"며 "아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3월부터는 꼭 연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또 한 단원은 길을 가다가 날치기를 당해 놀라서 쓰러져 뇌를 다쳤다. 언어장애까지 왔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 3월이면 나와서 노래를 하겠다고 열심히 치료 중이다.

봉사활동도 적극적

20일에는 하이원빌리지 어르신들 송년잔치에도 초대됐다. 소규모 단원들은 탬버린을 치며 '무조건'을 열창했다. 7월22일에는 강원도 해산진교당 봉불식 작은음악회에도 출연했다. 노래로 마음은 청춘인 노익장을 과시한 것이다.

엄 지휘자는 "앞으로는 대형병원 로비에서도 중창단 규모로 작은음악회를 할 계획이다"며 "어르신들이 합창하는 모습을 보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희망을 갖기 바라는 마음이다"고 계획을 밝혔다.

또 매년 5월이면 중앙여자원로수도원을 찾아 스승님들께 보은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지난해 5월 첫 시도를 한 후 올해는 여건이 닿지 않아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노래로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하얀음계 단원들. 언제까지나 웃음 가득한 예쁜 언니들로 마음 속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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