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명 교무 / 성주성지사무소
나에게는 깊은 마음 바탕에 축이 되는 4가지 환희지(歡喜地)가 있다.

영혼 방황 멈추게 한 스승님

대산종사님은 힘들고 지친 내 영혼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어주신 스승님이시다. 어려서부터 출가라는 마음이 깊이 박혀 빠져나오질 못 할 때 원불교를 알게 됐다. 출가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마음의 방황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유는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과 스승님을 찾고 싶었으나 원불교는 내 영혼을 맡기기에는 아직이다는 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대산종사님을 뵈러 추천교무님과 함께 삼동원에 갔다. 그때 내가 본 대산종사님은 종법사님의 권위도 인생의 순환속의 할아버지도 아니고 방광(放光) 그 자체였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그렇지만 한계가 없는 위엄이라고 해야 하나 내 모든 인식을 동원하였으나 마음에 담아낼 수가 없었다.

삼동원에서 본 대산종사님은 우주와 지구와 섞이지 않는 또 하나의 태양이었다. 뵌 순간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떠나가고 내 마음 속에 천하가 되어 그대로 자리 잡았다. 내가 없어져 버렸다. 내가 찾는 마음과 하나 되어 버렸고 스승관 진리관 서원관이 다 통해져서 죽으나 사나 표준이 되어버렸다.

영산회상 보여줌

대종사탄생백주년 기념식에서 대중은 기다리는데 대산종사님과 용타원 서대인 예비 대원정사님과 손을 잡고 등장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천상계를 사바세계에 내려놓는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 분의 법의 훈증에 쌓인 군중들의 실제를 보았다. 대산종사님의 그 모습에 나의 두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너 말해봐라"

열반상을 나투시기 전 1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수계농원으로 매일 내왕 하실 때 교도 접견도 안하시고 말씀도 안하신다고 했으나 돈암교당 교도님을 모시고 성지순례중에 모습만이라도 보고 가자고 하여 수계농원으로 가게 됐다.

"접견도 안하시고 모든 말씀을 안 하시니 가라"고 시봉진의 안내를 받았다. 뵙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주위를 한참 맴돌고 있는데 법무실장님이 특별히 나오신다고 앉아 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운 좋게 대산종사님을 모시고 법무실장님으로 부터 대산종사님 근황과 법문을 받드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날 우리는 '천화가 만건곤하니 평화는 오리 평화는 오리' 법문을 받들고 '대종사님은 부처님이시고 여래이시고 주세불이시다'라는 구호도 외쳤다. 우리가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대산종사님께서 마스크를 벗으시고는 나를 가리키면서 "너 말해봐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뵙고 싶어서도 아니고 "보고 싶어서요"하니 "됐다! 가라"하시고 들어가셨다. 그때 대산종사님 뒷모습의 성체가 내 마음에 고이 간직돼 있다. "너 말해봐라" 이 말씀이 유촉이 됐다.

절대의 자비심 심어줘

병이 위중하셔서 서울삼성병원에 입원 차 헬기로 이동하셨다. 어서 가보라고 하신 열반하신 연타원 소이근 교무님의 배려로 서울삼성병원으로 달려갔다.

헬기에서 입원실로 모셨을 때 성안도 뵙고 손을 만져도 보면서 아프셔서 오신 것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순리자연한 도를 보여주시고, 인연들의 마음에 보은으로 이어주는 제도를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은 절대 자비심을 내 마음에 심어주신 것이다. 그간 대산종사님은 스스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처지에서도 부처되는 것을 증명해주시고 어떠한 역경 난경에도 신명이 살아나게 법을 담아주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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