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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 조선동네 촌장 송기준 씨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 조선동네 촌장 송기준 씨
  • 정만웅 기자
  • 승인 2013.01.25
  • 호수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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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숨결을 느껴보세요'
▲ 송참봉 조선동네 촌장, 송기준 씨.
3천 년을 넘게 이어왔지만 근 50년 사이에 사라져버린 생활상, 그 속에 매몰된 잃어버린 가치까지 복원하는 사람이 있다. 전북 정읍시 영원면 조선동네 촌장, 송참봉으로 더 유명한 송기준(65) 씨다.

송참봉 조선동네

동네의 먼발치에서부터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진동했다. 단순히 장작이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밥뿐 아니라 잠까지 데우며 좁은 멱통을 거쳐 퍼져나가는 듯 했다. 그야말로 삶이 꾸덕꾸덕 묻어 있었다.

조선 벼슬아치의 상징인 탕건을 쓴 송기준 씨는 서당 훈장처럼 매서울 것 같았지만, 입술에서는 의외로 유순하고 다정다감한 말투가 새어 나왔다.

"민속촌에 있는 고대광실 기와집은 조선의 권력자들의 집입니다.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지은 것이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초가집에서 불쌍하게 살았지만 진한 행복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원래 이곳은 월송동(月松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던 터이다. 하지만 50여 년 전에 완전히 멸실돼 논밭으로만 이어오다가 2005년부터 그의 손길로 다시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여기서 몇 킬로 떨어지지 않은 이평면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그는 조선시대부터 누대로 이어온 종가의 사람 같다. 하지만 9세에 부친을 따라 상경해 서울에서만 45년 동안 타향살이를 했다. 서울에서는 오랜동안 가구공장을 운영하며 10명의 직원을 둔 사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가족의 가치를 괄시하고 자신만 아는 세태를 벗어나 우리의 소중한 삶의 모습을 되살려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고 고전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득한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의 삶에 비해 요즘은 신분의 차별도 없고, 먹을 것에 허덕일 필요가 없는 시대임이 분명합니다. 그야말로 상감마마의 생활이죠.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우리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합니다. 쌀이나 콩이 무엇인지도, 또 귀한 줄도 모른 채 문명의 이기가 주는 풍족 속에 위태위태한 삶을 이어가고 있죠. 그들에게 TV도 인터넷도 없는 전통의 삶을 통해 과거의 가치를 전달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계획을 1995년부터 무려 10년 동안의 구상 시간을 통해 '조선동네'라는 사업에 뛰어 들었다. 전통의 삶을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때와 똑같은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 처마 밑에는 우리네 살림살이가 한가득 부려져 있다.
뜨끈한 구들방에

피어나는 가족의 정

전통과 힐링의 이중주

처음에는 전기도 사용하지 않고, 화장실도 주거공간과 떨어진 '뒷간'과 저녁에는 요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미 현대문명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이런 곳에서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몇 년 전부터 전기와 화장실만큼은 들여오게 됐다고 한다.

"구들을 놓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술전수가 맥이 끊겨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옛날 초가집에서 구들장과 주춧돌을 빼와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했죠. 초가집이라는 것이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을 거쳐 그 형태가 다져지는 것인데 알다시피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그는 그야말로 기본부터 제대로 옛날방식을 택하려 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옛날 것을 취하려고 한 요즘의 상업형태와는 철학부터 다르다. 그러기에 그에게 10년이란 구상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으리라.

집을 짓는대도 현대식 줄자 및 공구를 일절 배제했다. 옛날 초가집은 그런 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고증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조선동네 초가집의 벽과 바닥은 직선보다 손의 울퉁불퉁한 감성이 그대로 묻어있다. 따듯함과 정성의 시간이 율동한 채로 멈춰있다. 이곳에서는 세월의 더께가 점점 더 쌓여 의미가 깊어져갈 것만 같다.

이곳 1만5000㎡의 부지를 찾고 선정하는데도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주변에 현대 건물과 인가가 없는 곳으로 들어와 이곳만의 풍치를 느끼는데 방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생각해보니 이곳에 들어올 때도 몇 번이나 굽이굽이 핸들을 꺽고 나서야 이곳에 당도했다.

주로 주변 동네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해 만든 이 동네는 5년 동안 1만여 명의 인력이 동원됐고, 40억 원이 투자돼 28채의 초가가 지어졌다. 그의 신념과 재산을 모두 투자한 일생일대의 사업인 것이다.

"고조할아버지가 실제로 고향의 참봉이셨습니다. 참봉은 종9품의 말단관리로, 고을의 문중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도맡아 했죠. 나는 그 역할을 이어받고, 이러한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참봉'이란 정신적 지위를 스스로에게 부여했습니다."
▲ 전통 가옥 뿐 아니라, 전통방식의 먹거리의 복원에도 주력을 기울이는 조선동네.
그의 이런 철학과 노력으로 조선동네는 제법 구성지다. 동네의 입구에는 식사와 술을 한잔 할 수 있는 주막이 친근히 사람을 맞아주며, 그 옆으로는 각종 장이 담긴 장독대가 정겹게 열을 맞춰 서 있다. 마을 중앙엔 '농자천하지대본'이란 커다란 깃대가, 외양간 안에는 소가 큰 눈을 꿈벅이며 콧김을 내뿜고 있다. 곳간에는 무엇이 들었을지 새삼 궁금하게 만드는 정겨운 공간이다.

"가족은 서로 밥을 같이 먹는 사이입니다. 식구(食口)라는 말 속에 잘 드러나 있죠. 오랜 시간 하숙집 아줌마의 밥을 먹고 산 경우 어머니와의 하숙집 아줌마의 경계는 모호해집니다. 그만큼 가족관계에서 밥을 같이 먹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쁜 일상이더라도 아침이나 저녁 중 꼭 한 번은 가족과 식사를 해야 합니다. 또 잠을 잘 자야 합니다. 요즘 다들 고급 아파트에 살지만 잠을 잘 이루지 못합니다. 컴퓨터며 스마트폰 등의 모든 편의기구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안정감을 박탈했기 때문이죠. 조금 불편하지만 이곳은 편히 먹고 잘 수 있는 우리의 전통공간입니다. 저는 이곳을 다녀간 분들이 이곳만의 편안함을 느껴 '내 집에 가고 싶지 않다, 이곳을 떠나기 싫다'라는 감정이 생기도록 만들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그의 등 뒤로 '밥'이라고 커다랗게 써진 글씨가 보인다. 그 주변에는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더불어 밥을 나누는 일이거늘 오메 이 지상에서 내가 그대와 저녁 한 끼를 나누네"라는 백학기 시인의 시가 적혀 있다. 여기 푸근한 살림과 저기 살뜰한 말들로 인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방에 기름먹인 한지를 마저 바르러 간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모습에서 조선 사람의 일상이 잔잔하게 느껴졌다. 돌아서 나오는데 아궁이 옆에 개 한 마리가 자신의 뒷다리를 베고 단잠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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