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 웰다잉의 표상

세상은 잘 사는 것(wellbeing)에서 잘 죽는 것(welldying)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교단에서 웰빙 - 웰다잉의 표상을 말하라면 양산(養山)종사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양산종사는 전국 각지를 돌며 명쾌한 인과설을 하는 큰 스승이었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연만해서까지 반바지 차림에 테니스를 즐기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영육쌍전, 동정일여'의 표본이었다. 특히 활달한 웃음과 소탈한 성품은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았다. 마음이 늘 유유자적하고 사소한 일에도 관심과 사랑을 나눠 주었다. 그러면서도 매사 법도에 벗어남이 없이 대의명분에 맞게 공사를 분명히 했다.

이런 일생을 산 그는 원기83년 꽃들의 향연으로 화사한 봄날. 자신의 육성으로 만든 경전 테이프를 들으며, 생사초월의 대해탈의 행복한 열반락을 나투었다.

이미 유년시절에 〈천자문〉, 〈통감〉, 〈시경〉 등을 배웠고, 〈대학〉, 〈중용〉, 〈대학〉 등을 막힘없이 외웠다. 10세를 전후한 약관의 나이에 인생무상과 생사문제에 깊이 의문을 걸었다.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무상한 삶에서 영원히 사는 법이 없을까에 천착했다. 이러던 어느 날 '합천 해인사 경판 속에 불로초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를 범상히 듣지 않고 부처님의 법속에 불로초가 있음을 알고 그 가르침을 배우기로 마음먹고 출가 수도에 뜻을 굳혔다. 출가하여 '생천(生泉)이란 불명을 받고, 사찰을 전전하며 뜻을 이루려 하였으나 답답함만 더했다.

구도 열정으로 가득하던 날, 우연히 대종사 문하에서 공부 하던 채규원씨를 만나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그가 '도를 알고 싶으면 불법연구회를 오면 참 스승을 만날 수 있다'고 안내해 줬다. 원기26년, 드디어 총부를 찾았다. 대종사는 '재주를 감추고 묵묵히 공부 하라'는 뜻에서 '중묵(重默)'이란 법명을 내렸다. 그러나 후일에 '중묵(中默)'으로 법명을 바꿔 주시며 "중도를 잡아 공부 하라"하셨다. 이렇게 공부 하던 중 '일원상의 진리'를 보고 "내가 구하던 불로초가 여기에 있구나"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깨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또래들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김중묵은 과수원등에서 여러 해를 거친 일을 하면서도 기쁨으로 살았다. 유일학림 2기생이 되어 공부하던 중 천문학 책을 보다가 '영혼부정설'을 주장했다. 그런 그에게 정산종사는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공부의 올바른 방향을 잡게 했다. 이후 영혼, 업, 삼세인과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마했다. 한 경지를 이룬 양산종사는 원기64년 인과설을 집대성한 〈인과의 세계〉를 발간해 후학들의 길잡이가 됐다.

양산종사는 화해·남원·익산교당 교무와 교화부장, 총무부장등 여러 일터에서 봉직 했다. 특히 순교감으로 활동 하면서 각 지역에 법흥을 일으키며, 걸리고 막힘이 없는 무애(無碍)중 유애(有碍)하는 참 도인의 삶을 살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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