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교화발전이 우선입니다"
교당 신축 1천일 기도 결제, 조석으로 기도
신도시로 이전, 새로운 교화 발전 꿈꿔

봄의 전령들이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다. 산길은 질퍽거리고 얼었던 계곡은 봄물이 터져 요란스럽다. 이런 시기에 9년 넘게 교도회장직을 수행하며 신앙하고 있는 교도를 소개 받았다. 한걸음에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도안교당 조인적(74) 교도. 집에 들어서자 한약냄새가 배어났다. 한쪽 방에 한약방이 차려있기 때문이다. 평생 한약을 다루며 살아온 삶과 연관이 있다.

"오랫동안 대전을 떠나 생활해 왔습니다. 전남 나주시에서 한약업을 했기 때문에 가정에는 한 달에 2번 정도 다녀갈 정도로 생업이 바빴죠. 본격적으로 교도회장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2008년부터입니다. 대전광역시에 정착하면서 교당의 대소사를 챙기고 있어요. "

그는 3월 도안교당 봉불식을 앞두고 마음이 바쁘다. 교당 건축에 따른 부채 해결부터 교화에 이르기까지 걱정도 많다. 그래서 일심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것이 1천일 기도다. 아침과 저녁 두 번 올리는 1천일 기도는 오로지 교당의 교화활성화에 대한 염원이다. 기도를 통해 모아진 금액은 매월 월초 기도금으로 교당에 헌공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으로 1천일 기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매월 기도금으로 17만원을 헌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녀와 증손녀 포함해 17명이라 한 달에 1만원씩 계산한 거죠. 5남매들이 도안교당 신축불사에 어떻게든 협력하게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십시일반의 정신이라고 할까요."

이런 그의 바람은 자녀들과 손자녀들이 도안교당으로 출석하면서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 그의 불공이 현실화된 셈이다. 이런 그가 신앙에 눈을 뜨게 된 것은 큰 아들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현대건설에 근무 중이던 큰 아들의 갑작스런 비보는 그의 삶을 온통 바꿔놨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현대건설에 갓 입사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난 아들을 위해 정성껏 열반 천도재를 지냈지요. 세상이 허무해지고 삶의 의욕마저 사라졌습니다. 천도재를 지내면서 대종사님의 교법에 대해 신심이 나고 절대적으로 의지해야겠다는 발심이 났죠."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한약업부터 운수업, 인삼농사까지 다양한 직종의 사업들을 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든든한 의지처로 함께해 준 아내 김영실 교도가 있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실 그가 원불교에 입교한 것도 김 교도의 영향이다. 학창시절부터 교당에 다녔던 김 교도는 결혼의 조건으로 원불교 신앙을 권했다.

신심깊은 인연은 개척기 도마교당에 그의 빌딩 2층(약 132㎡)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그는 교당을 신축하기 전까지 7년 넘게 공간을 제공하며 초창기 교화에 힘을 불어넣어 줬다.

"초창기 교당이라 교무님들이 교화하느라 너무 고생이 많았습니다. 교도가 얼마 없으니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의지할 데 없는 교무님은 저희 부부에게 많이 의지했죠. 성덕규 교무님이 부임해 부지를 마련, 새로 교당을 신축하면서 교화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교당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도안신도시 교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렇지만 도마교당이 도안 신도시(현 도안교당)로 이전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우선 도마교당이 신축한지 8년밖에 안됐고 이전에 따른 경제적인 비용과 교도들의 반발이 큰 걱정거리였다.

"제일 미안한 것은 전임 교무님께서 혈심혈성으로 교당을 신축했는데 또 다시 새로 이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임 교무님의 교화력이 밑받침이 되어 이렇게 이전할 수 있었던 점은 정말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도안신도시는 대전의 마지막 개발지입니다. 이곳은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된 곳으로 10만 명의 인구가 주거하게 됩니다. 옛 주택가에 있던 교당을 활력이 넘치는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은 교화발전상 큰 결단이었습니다."

이렇게 교당이 도안신도시로 발 빠르게 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김혜봉 대전충남교구장의 정책적 판단과 교도들의 합력이 뒤따랐기에 가능했다. 도안교당은 옛 교당에서 5km 정도 떨어져 외곽에 있다.

"도안신도시로 교당 이전을 결정할 때 교도들의 반발이 많았죠. 그렇지만 교구장님의 설득과 교당 비전을 생각할 때 신도시로 이전하는 것이 미래 성장을 위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고 안주하고 싶어 하는 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교도회장으로서 교화발전이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도안신도시가 안착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교당 발전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완공된 교당은 지하1층 지상4층의 1,485㎡로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 그는 도안신도시 시대를 맞으면서 대전에서 제일가는 교당이 되길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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