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성 도무·원경고등학교( 논설위원 )
작년 출가자들의 자격검정시험에서,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 묻는 문제가 출제됐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교리적으로 해석하는데 내용과 논리가 빈약했다고 검정위원들은 평했다(97년 12월 14일자 원불교신문). 장차 출가하여 '산중'에 은거하지 않고, 뛰어들어야 할 '사회'가 있는 신임 출가자들에게, 그 '사회'가 출제된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교리적 해석과 실천 논리가 많이 부족한 것은 우리 교단이 갈등 양상을 보이는 사회 문제에 오래도록 관망하는 자세를 견지해온 결과일 것이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을 기억한다. 32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한국계 미국인이 저지른 일로서, 교단은 그 때 전국 교당에서 일제히 천도재를 봉행토록 했다. 그러나 이 사건 두 달 전에, 여수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외국인 노동자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던 참사는 아는 사람조차 드물 것이다. 먼 미국 땅에서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영가와 한국 땅에서 사망한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 영가는 그 목숨의 무게가 이토록 다른 것인가?

2009년 벽두에 일어난 용산 참사로 6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그 해 봄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 사태로 2646명이 해고되고, 23명이 죽어갔다. 이 중 13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진실로, 버지니아 공대 희생자들에게 올렸던 그 정성어린 천도재가 그들에게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4대강 사업, 원자력 발전소 문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무수한 갈등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국책 사업이라며, 이에 따른 이익이나 그 찬반 따위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 권력이든 자본이든, 강자의 확장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약자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므로 종교는 그 약자의 아픔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며 '사회'를 교리적으로 해석하고 연마하는 작업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1900년부터 2007년까지 107년간 미국 정부가 매년 발표한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에는 살인과 자살률이 급증했고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에는 살인과 자살률이 어김없이 급감하였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이 사실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지만 그 사회는 다시 개인에게 부단히 영향을 줌으로써 상호작용 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에 법륜 스님이 쓴 책 〈쟁점을 파하다〉에는 새로운 정치 리더십, 통일,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견해들이 담겨있는데 그 해법의 타당성은 둘째 치더라도 스님으로서 이처럼 폭넓은 사회문제에 대해 나름의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원불교 교법은 기존 종교에 대하여 대안적 성격이 강하다. 그 대안성은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에 있다. 교법 실현을 위해서는 교당이 산에 있느냐, 시장에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마땅히 시대와 사회를 꿰뚫는 혜안을 갖추고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껴안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전무출신을 양성하는 원불교학과에서도 사회현상과 과제를 다루어 안목을 넓혀야 하며 지금도 사회 속에서 '원불교적 실천'을 모색하는 출재가 교도들에게 성원을 보내야 한다.

또한 사회 교화를 열어가고 있는 개인과 단체가 연합체를 이뤄 활동역량을 결집하는 노력도 기울였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사회 현상과 시대 문제를 연구하고 이에 대한 교법적 해석과 장단기 실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사회교화연구소'같은 기구를 설치하여 활용하는 것도 교단100주년 이후를 내다보는 중요한 교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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